기사입력 2018-12-28 03:00:00
기사수정 2018-12-27 20:31:43
통영 출판사서 ‘꽃신’ ‘푸른씨앗’ 출간
“지금 저 판자 위에 꽃신 다섯 켤레만이 피난민으로 가득 찬 시장의 공허를 담고 있다. 그것이 다 팔려 가기 전, 한 켤레 신발을 위해 돈주머니를 다 털어 버리고 싶지만 결혼 신발 아닌 슬픔을 사지나 않을까 두렵다.”
결혼식 때 신을 꽃신을 만드는 ‘신집’ 딸을 어린 시절부터 이웃집에 살면서 좋아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소를 잡아 파는 백정집 아들이다. 쇠가죽은 신집에서 사가는데, 갈수록 사람들이 꽃신을 외면해 신집은 쇠가죽 값도 제대로 치를 수 없다. 신집 아버지는 한탄한다. “요즘 혼인은 너무 서둘러서 메뚜기 흘레식이다. 혼삿날에 양화 고무신을 신거든. 내 딸은 고무신을 백날 신기느니보다 단 하루라도 꽃신을 신기겠다.”
아이에게 ‘꽃신에 담긴 흰 버선발의 오목한 선과 배(木船) 모양으로 된 꽃신’의 ‘선은 언제나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신집 딸을 보려고 담 너머로 기웃거리면 겨우 처마 밑에 꽃신만 보였는데 “왔다 갔다 하는 꽃신은 공중에 춤추는 것 같아” 황홀했다. 그 아름다움은 가난과 전쟁과 편견 속에서 스러지고, 장성한 아이는 부산 피난지에서 이제 결혼 신발의 황홀 대신 슬픔을 사는 형국이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전개되는 김용익(1920∼1995·사진)의 이 단편 ‘꽃신’은 1956년 미국 ‘하퍼스 바자’에 영문(‘The Wedding Shoes’)으로 먼저 발표된 이래 ‘뉴욕타임스’ ‘뉴요커’ ‘마드모아젤’ 등 해외 매체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미국, 영국,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는 우수 도서로 선정했고 미국과 덴마크에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그의 작품을 수록했다.
최근 남쪽 통영의 출판사 ‘남해의 봄날’에서 김용익 중단편 소설들을 새롭게 편집한 소설집 ‘꽃신’과 ‘푸른 씨앗’을 출간했다. 표제작들을 포함해 ‘동네술’ ‘겨울의 사랑’ ‘서커스 타운에서 온 병정’ ‘밤배’ ‘씨값’ ‘아시땅’ ‘해녀’ 들과 영문 ‘꽃신’도 실었다. 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는 “김용익 소설이 도달한 문학적 성취에 합당한 평판을 받지 못했고 한국 현대문학사는 그를 소홀했거나 지나쳤다”고 지적한다. 김용익은 통영에서 태어나 194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58년 귀국해 고려대, 이화여대에서 강의하다가 다시 도미했으며 말년에는 고려대 초빙교수로 한국에 머물다가 지병으로 별세했다. ‘푸른 씨앗’ 말미에 ‘나의 삼촌 김용익’에 대해 회고한 김수환씨는 삼촌의 맑고 강직했던 성품을 증언하며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고 적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