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8-12-29 18:00:00
기사수정 2018-12-29 13:25:58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의 희생이 노동자를 '위험의 외주화'로부터 보호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면 개정이라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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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씨 어머니가 지난 27일 오후 국회에서 ‘김용균법’ 처리 여야 합의 소식을 듣고 아들 직장동료를 껴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연합 |
개정 산안법은 원·하청 구조를 활용한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첫걸음 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씨가 당한 것과 같은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위험의 외주화' 보호,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산업재해 근절 갈길 멀어
산안법 전면 개정안은 지난 27일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산안법 전면 개정은 고 문송면 군을 비롯 원진레이온 노동자 230명의 사망에 따른 1990년 개정 이후 28년만인데요.
개정 산안법은 산재 사망자 중 하청 노동자 비중이 2016년 기준 42.5%에 달하는 등 위험의 외주화가 심각하다는 인식에 따라 산재에 대한 원청 사업주 책임을 강화했습니다. 사업장 유해·위험 요소에 대해 원청 사업주가 실질적인 지배·관리권을 가진 점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원청 사업주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일부 위험 장소에서 '사업장 전체'로 확대했습니다. 화재·폭발·추락·질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해·위험 장소로,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가능한 곳도 책임 범위에 들어갑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차단하기 위해 일부 위험 작업은 사내 도급 자체를 금지했습니다. 직업병 발생 위험이 큰 도금과 수은·납·카드뮴을 사용하는 작업이 이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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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인근에서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범국민 추모제 참가자들이 조형물을 끌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연합 |
정작 김씨가 사고 당시 수행했던 작업은 도급금지 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2006년 구의역 사고 당시 사망 노동자 김군이 했던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개정 산안법의 도급금지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금지 범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입니다.
개정 산안법은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지만, 노동계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원청 사업주 안전보건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은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인데, 개정 산안법은 이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수위를 높였습니다.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을 강화했습니다.
◆원청 사업주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 처벌 강화? '글쎄'
노동계는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에 '징역 1년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는 하한형을 도입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이는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에도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개정 산안법도 산재 사망사고를 초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점을 고려해 같은 범죄를 5년 내 두 번 이상 범할 경우에는 형벌의 2분의 1을 가중하도록 했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산안법 위반 사범의 전과자 비율은 21%에 달했습니다.
이밖에도 개정 산안법은 법의 보호 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해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산안법 보호를 받지 못했던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배달 종사자 등도 보호 대상에 포함했습니다.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사업주는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화학물질 명칭과 함유량 등을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습니다.
화학물질 영업비밀 적용 비율이 2009년 45.5%에서 2014년 67.4%로 증가하는 등 영업비밀이 폭넓게 인정됨에 따라 노동자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결과적으로 위험에 노출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됩니다.
개정 산안법은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대표이사가 기업의 안전보건 계획을 수립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도록 했습니다. 이는 산재 예방 시스템이 사업장 차원이 아닌 기업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가동되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는 게 노동부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산안법 전면 개정으로는 후진국형 산재를 막는 데 역부족이며 선진국의 '기업살인법'과 같은 강력한 법·제도로 기업의 안전보건 책임을 대폭 강화해야 산재를 근절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차별받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입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국민연금 직장가입자 전환 추진
한편 정부가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이른바 '특고'(특수고용직) 노동자를 국민연금의 사업장 가입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이 사업장 가입자가 되면 직장인의 연금 보험료를 사업주와 반반씩 나눠서 내도록 하는 원칙에 따라 보험료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특고 노동자는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임금 노동자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현재는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서 빠져 실업급여 등을 받지 못합니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국민연금에 가입하려면 지역가입자로 적용돼 보험료를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하거나 납부예외자로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는 실정입니다.
노동부는 국제노동기구(ILO)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권고에 따라 이들 특고 노동자를 노동법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이들의 국민연금 직장가입자 전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4일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연금 개편 정부안)에 특수고용직의 사업장 가입 전환을 담은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이는 지난 8월 4차 재정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국민연금 제도개선 사항으로 제안한 방안입니다.
정부는 관련 부처 정책 추이 등을 참고해 이들을 단계적으로 사업장 가입자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일단 특고노동자의 경우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9개 직종(약 44만명)을 우선 국민연금 직장가입자 적용 대상으로 검토할 방침입니다.
9개 직종은 보험설계사, 골프장캐디, 학습지교사, 레미콘기사,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등입니다.
특고 노동자는 2008년 7월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되는 등 점차 사회안전망에 편입되고 있습니다. 특고 노동자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는 최대 220만명으로 추산됐습니다. 디지털 기술 발달 등으로 특고 노동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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