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데…국문과 오는 외국인 유학생들” [심층기획]

'한류 열풍'의 그늘 / 외국유학생 14만여명… 4년새 2배 육박/ 입학·졸업기준 낮고 그마저도 미달 수두룩/ 한국학 연구는커녕 의사소통도 잘 안돼/ 유학생 수준 맞추자니 한국학생들 피해/“진학정보 태부족… 우리도 이런 줄 몰라”
“한글이랑 국어랑 뭐가 다른데요?”

서울의 한 대학 국어국문학과 A교수는 대학원 강의에서 이 질문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어학 석사 학위를 따겠다고 입학한 유학생의 한국어 수준이 고등학생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한류 때문에 외국인 유학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국문과 대학원생 중 외국인 유학생이 절반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외국인 유학생은 학문 연구는커녕 대부분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못한다고 한다. A 교수는 “대학원 과정은 학부 수준을 넘어 고도로 심화된 학문적 과제를 논하고 연구해야 한다”며 “유학생 수준을 맞추자니 한국인 대학원생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한국인 대학원생에 맞춰 수업을 하자니 유학생들이 전혀 따라오지 못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국의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이 2000년대부터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류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것’을 동경하는 외국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한국 문화 세계화나 관광산업 부흥 등 각 분야도 나날이 발전하는 추세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유학생은 미래의 한류 전도사로 불리면서 한류 확산에 긍정적으로 부각된 측면이 없지 않다.
6일 교육부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2014년 8만4891명에서 지난해 14만 205명으로 4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학원생 역시 2015년 2만2767명에서 현재는 3만명에 육박한다.

문제는 급격히 증가한 외국인 유학생을 제대로 수용·교육하지 못하면서 한국학 연구가 지지부진하거나 소홀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학을 배우거나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한국어 능력도 갖추진 못한 외국인 학생들이 국문학 등 한국학을 연구하는 데서 비롯되는 결과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유학생을 탓할 일이 아니라, 국내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들을 단지 ‘재원 마련’의 도구로 취급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와 대학이 몰려오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감당할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에 유학 온 외국인 유학생들은 대체로 한국 언어와 문학을 배우기 위해 인문사회계열을 선호한다. 지난해만 학부 과정 유학생 5만6097명 중 3만9161명(70%), 대학원 과정 유학생 2만9939명 중 1만7997명(60%)이 인문사회계열을 택했다. 취업난으로 인문학을 기피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늘면서 그 빈자리를 외국인 유학생들이 빠르게 채워나가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대 국문과 대학원생 김모(34·여)씨는 “한국인 후배 중에 취업난에 국문학 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학생은 거의 없다”며 “반면에 중국인 유학생은 꾸준히 늘어 중국어를 하시는 교수님께서는 국어학 수업 때 중국어를 섞어 강의하시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어학 능력은 ‘미달’ 학업탐색도 ‘글쎄’

‘한국학’의 전파를 위해선 외국인 유학생들의 증가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육체계 정비 없이 받아들이다보니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정부에서 제시하는 대학원 입학 필요요건인 어학능력 수준이 터무니없이 낮다. 정부가 권장하는 국내 대학 입학 한국어능력시험(TOPIK) 수준은 2급에 불과하다. 졸업을 위해서는 4급만 받으면 된다.

토픽 2급은 전화하기나 부탁하기 등 일상생활에서 공공시설을 이용할 정도이고, 4급은 일반적인 업무를 이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학문 연구를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인 5급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현실에선 대부분의 유학생이 졸업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7년 전국 217개 대학에서 토픽 4급을 충족한 학생이 1명도 없는 대학이 43곳(19.8%)나 됐고, 30%에 못 미치는 대학도 99곳(45.6%)에 달했다. 대학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국 659개 대학원 중 285곳(43.2%)은 토픽 4급인 대학원생이 1명도 없었고, 594곳(90.1%)은 어학능력을 충족한 학생이 30%에 못 미쳤다.
외국인 유학생들 역시 제대로 된 학업·진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고 한다. 한류에 흥미를 느끼고 한국어를 조금 더 잘하고 한국문화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덜컥 국내 국문과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입학 후 대학과 대학원에선 한국어의 체계와 구조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한국문학을 갖가지 비평이론으로 분석한다는 것을 알고 진학을 후회하는 학생들이 많다. 결국 일부는 적응하지 못한 채 중퇴를 선택하기도 한다.
중국인 유학생 개맹(27·여)씨는 “친구들 대다수가 한류에 매료돼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며 “막상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고 첫 수업을 듣고 너무 놀라 좌절감을 수차례 겪었다”고 한숨을 지었다. 다른 중국인 유학생 후교홍(26·여)씨도 “이집트 유학생 1명과 중국인 유학생 1명이 지난 학기 학업을 중단했다”며 “학교가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학과에 대한 설명과 홍보를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대가 유학생 432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절반(47.2%) 가까이가 “한국어로 진행되는 전공수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많다”고 답했다. 이들 응답자의 43.8%는 ‘한국어 능력부족’을 ‘학업상 어려움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또 정부 초청 장학생에 해당하는 107명에게 사전 한국어 교육의 도움 수준을 묻자 ‘매우 불충분’(34.6%),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8.4%)는 답변이 나왔다. 이마저도 정부 초청 장학생의 경우 서울대 입학 전 1년 동안 한국어 연수기관에서 필수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충격적인 결과다.
◆유학생, 재원 마련 아닌 교육 대상으로 봐야

대학 입장에서 유학생 유치는 달콤한 유혹이다. 국내 대학 진학생 감소, 등록금 동결, 시간강사법 시행 등 안팎으로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학에게 외국인 유학생은 학교 수익과 직결된다. 각종 대학평가기관들이 유학생 규모를 국제화 지표로 삼고 있는 것도 대학들을 유학생 유치전쟁으로 내몰고 있다. 정부도 2023년까지 유학생 20만명 유치를 목표로 모집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이래저래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을 감당할 인력과 체계도 없이 ‘양적 성장’에만 매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학능력 기준을 강화하고, 그에 못 미치는 학생들을 교육할 프로그램을 새로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용련 한국외대 교수(교육학)는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 유학생들 탓에 수업과 조활동이 원활하지 않아 국내 학생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다”며 “국내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준으로 입학 기준을 높이고 외국 대학처럼 1년간 어학과정을 필수 이수시키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상철 한신대 교수(사회학)도 “학교가 교육보다는 재원에 중점을 두고 유학생들을 뽑고 있다”며 “국학 연구에 침해가 되지 않도록 유학생을 교육하는 거점 대학을 마련하는 등 재구조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