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소하면서 조 전 코치를 성토하는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심 선수 측 변호인에 따르면 심 선수는 지난달 17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조 전 코치에 대한 고소장을 추가로 제출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2014년부터 조 전 코치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2014년 당시 심 선수는 만 17세로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고소장에는 당시 시작된 성폭행이 지난해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한 달 남짓 앞둔 1월 중순까지 계속됐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심 선수 측은 고소장을 통해 "조 전 코치가 초등학교 때부터 절대 복종을 강요했고, 주변에 알리지 못하도록 협박도 일삼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심 선수는 변호인을 통해 "지도자가 상하관계에 따른 위력을 이용해 폭행과 협박을 가하고, 약 4년간 상습적인 성폭행을 해온 사건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묵과해서는 안될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피해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가대표 선수로서, 여성 피해자로서 당할 추가적인 피해와 혹시 모를 가해자의 보복이 너무 두려워 모든 일을 혼자 감내했다"고 전했습니다.
심 선수의 조 전 코치에 대한 고소 내용이 사실이라면 고교 2학년 때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한 것인데요. 13세 이상의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는 형법이 아닌 청소년성보호법을 적용해 가중처벌하고 있습니다.
일반 형법상 강간치상죄의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규정되어 있는 반면, 청소년성보호법에서는 최저 형량을 7년으로 규정해 훨씬 무겁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강간에 이른 수단으로 폭행·협박 외에 위계 또는 위력으로 인한 경우에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처벌하는데요. 미성년자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확립되지 않을 수 있어 그만큼 보호받을 필요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 전 코치는 성폭행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심 선수 "4년간 상습적인 성폭행 당했다"…조 전 코치, 성폭행 혐의 전면 부인
전문가들은 체육계 코치와 감독들에게 제대로 된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여성 코치와 감독도 많아지면 이같은 일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조 전 코치를 비롯한 가해자들의 성폭행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를 뿌리째 흔들 '핵폭탄급 뇌관'이 될 공산이 큽니다.
벌써 성적 지상주의와 폐쇄적인 체육계 관행이 낳은 부끄러운 민낯이라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는데요.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를 관리 감독하는 대한체육회 등에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은 상황입니다.
이참에 성폭력이라는 적폐를 완벽하게 도려내지 않으면 한국 체육은 빙상계와 엘리트 스포츠를 향한 국민의 엄청난 불신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런 가운데 성폭력 가해자 래리 나사르(56)를 법으로 단죄한 미국 여자 체조선수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다시금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미시간대 체조팀과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를 지낸 나사르는 30년 가까운 기간 300명이 넘는 여자 체조선수들을 성추행·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사실상 종신형을 받고 수감중입니다.
미국 전·현직 체조선수 150명은 지난해 1월 나사르에게 당한 성적 학대를 잇달아 폭로했는데요.
2017년 연방 재판에서 징역 60년을 선고받은 나사르는 선수들의 연쇄 증언이 나온 지난해 1월 미시간주 법원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유죄를 인정하고 최고 175년형을 또다시 선고받았습니다. 2월 판결에선 여기에 최대 125년 형을 추가로 선고받기도 했는데요.
나사르의 일탈을 방조하고 선수들을 보호하지 못한 미국 체육계는 구조적인 허점을 드러내고 곳곳에서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에 미국체조협회는 물론 미국올림픽위원회 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사퇴했고, 한 번 땅에 떨어진 체육계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미국체조협회와 미국올림픽위원회를 상대로 수백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관련 조사가 진행중이라 나사르 사태는 언제 잠잠해질지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성폭력의 구조적 문제, 韓 스포츠계만의 수직적 관계에서 기인
심 선수 폭로는 체육계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의 도화선이 될 수 있어 당국도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지도자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례가 더 있으며, 가해자들이 연맹에 남아있다는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의 폭로가 10일 나왔습니다.
피해자가 심 선수 말고도 더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바뀌지 않는 빙상계 내부 실태를 꼬집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 대표는 "피해자들은 현재까지도 보복이 두려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고 있다"면서 "신고센터가 있어도 유명무실하다. 빙상연맹만 봐도 그 안에서 모든 걸 쉬쉬하며 덮으려는 게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여 대표는 이같은 성폭력의 구조적 문제가 한국 스포츠계만의 수직적 관계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는 "외국에서 선수생활도 해봤지만 거기는 서로 거의 친구처럼 대하고, 그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국은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며 "심석희 같은 경우 권력구조가 한명에 의해 좌지우지 된 게 컸고, 빙상계에서 끼치는 권력이 어마어마해서 학부모나 선수들이 맞서 싸우기엔 어려운 구조였다. 소치올림픽 전에도 대표팀 코치 하나가 성문제로 나갔지만 결국 돌아와서 코치생활을 아직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2014년에는 소치올림픽을 한달 앞둔 상황에서 제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가 퇴출된 적도 있습니다.
여 대표와 시민단체는 향후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칭)를 구성할 예정입니다.
◆조 전 코치 폭행 피해 입은 다른 선수들 합의 취하…법원 선고에 어떤 영향?
심 선수가 조 전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조 전 코치의 기존 폭행 사건 재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조 전 코치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날 경우 경찰 수사 방향의 경우의 수는 조 전 코치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거나,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것으로 좁혀지는데요. 2가지 경우 모두 현재보다 수사 동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심 선수에 대한 피해자 조사를 2차례 마친 가운데, 조만간 조 전 코치가 수감된 구치소에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조 전 코치의 항소심 재판 결과에 따라 계획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는데요.
조 전 코치가 원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으면 상관없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되면 수감 상태인 지금보다 조사일정을 잡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조 전 코치는 원심부터 혐의를 인정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은 작습니다.
실제 경찰은 조 전 코치의 변호인과 조만간 피의자 조사를 진행하기로 잠정 조율했지만, 집행유예가 선고될 경우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 때문에 경찰이 강제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구속영장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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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성폭력 예방교육 대상인 선수와 지도자가 2017년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교육 도중 대부분 졸고 있다. 하상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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