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9-01-21 13:00:00
기사수정 2019-01-21 13:29:46
[스토리세계] 甲이 둘인 퀵서비스 기사들
상당수 음식점이 지속되는 불경기와 최저임금 인상 여파 등으로 힘겨워하는 상황에서 이들 음식점에서 일감을 받는 음식 배달 퀵서비스 업계는 호황을 맞고 있다. 국내 3대 배달앱을 통한 주문은 지난해 기준 5조원을 넘어 4년 새 약 10배 늘었다. 전화로 주문하는 음식 배달까지 합하면 15조원 규모로 알려진다. 배달 기사들은 배달 건수당 평균 3500원을 받고 중계업체에 100~200원의 수수료를 낸다.
택배 기사들은 “부지런하고 욕심 있으면 월급쟁이만큼은 벌 수 있다”면서도 “고된 일 만큼 편견도 힘들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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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기사 정씨는 "일도 힘들지만 기사들을 대하고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
◆불경기 나 홀로 호황 배달 퀵서비스
배달 기사 정씨(40)의 하루는 오후 늦게 시작된다.
배달앱 음식을 주로 하는 그는 오후 5시쯤 일을 시작해 보통 새벽 2시까지 일한다.
정씨 설명에 따르면 최근 퀵서비스를 중계하는 사무실과 음식 배달 서비스를 도입한 자영업자가 증가해 음식 배달 기사가 많이 늘었다. 관련 업계에선 배달 기사가 6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정씨의 경우 배달 1건당 3000원의 요금을 받고, 거리에 따라 발생한 추가 요금을 챙긴다. 일이나 지역에 따라 배달요금은 5000원까지 오른다.
여기서 사무실 또는 배달앱에서 수수료로 100원~1000원을 제외한다. 배달 수요가 많아 기사가 귀한 곳은 수수료를 안 받는 사무실도 있다.
기사들은 프리랜서 개념이다. 어느 한 곳에 속하지 않고 사무실 또는 앱에서 일감을 받고 배달 완료 시 요금을 받는다.
부지런한 기사들은 매달 4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도 기사들을 바빠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 점주들이 직접 고용하던 배달 종업원들을 줄이거나 없애는 대신 수수료를 내고 기사를 호출하는 경우가 늘어서다.
◆“10분 일하고 3000원 받으면서 투정 부린다고?”···점주들 불만에 기사들 반박
점주들은 “길어야 10분 일하고 3000원씩 받으면서 멀다고 안가고 호출을 거부 하는 등 일을 골라서 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기사들은 “최저임금도 안 된다”고 반박한다.
기사들은 “일은 많지만 벌이를 위해서는 목적지를 골라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건당으로 지급되는 비용에 ‘회전율’이 높아야 기사들도 살아남는 구조여서다.
또 기사들이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8350원을 벌려면 1시간에 3건 이상 배달해야 하는데 추가 요금이 발생할 정도 거리라면 오고 가는 시간과 기름값 등을 따졌을 때 적자라고 본다.
하루 9시간 일하는 정씨의 경우 1시간에 배달 3건을 처리하고 26일 일해야 210만원을 번다. 게다가 경쟁이 치열해서 배달 일이 없거나 배달 요청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점주들은 매출 확대를 위해 거리가 먼 곳의 주문도 가리지 않고, 빠른 배달만을 요구해 기사들과 마찰을 빚는다.
정씨는 “점주가 높은 배달비를 이유로 그리 하지만 건건이 먹고살아야 하는 기사 입장은 다르다”며 “점주들은 불만을 쏟아내지만 최저임금을 이유로 아르바이트나 직원은 채용하지 않고 지적만 한다. 기사는 일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러나 그들은 갑의 위치에서 다양한 요구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눈이나 비 오는 날.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하소연할 곳도 없고 보험 아니면 보상받을 길도 없는데 늦었다며 빠른 배송을 요구할 때는 위험을 강요받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또 “다른 기사들이 멀다고 (배달)피한 요청을 생각해서 갔더니 점주는 되레 늦게 왔다고 화냈다”며 “시간당 3건 이상해야 최저임금인데 그들은 아깝다는 생각만 한다”고 하소연했다.
점주들은 비싼 사용료를 지적하지만, 직원 채용보다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 기사를 찾는다. 기사는 배달주문마다 사용할 수 있지만 직원은 매월 고정된 월급을 포함해 4대 보험, 퇴직금 그리고 최근 논란인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달 기사 중에는 이들 업계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도 상당수라고 정씨는 귀띔했다. 그러면서 점주들이 타박을 하면 야속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험한 꼴 많이 봐, 편견 힘들어”
기사들은 점주와의 문제도 ‘스트레스’라고 말하지만 “손님에게 당하는 무시(피해)도 심하다”며 “우리는 갑이 둘”이라고 전했다.
기사들은 대표적인 예로 ‘빨리빨리 문화’를 지적했다. ‘늦었다’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기사들은 농담 삼아 ‘30분이 마지노선’이라고 설명했다.
기사 A씨는 “40분 지난 요청을 받고 배달 갔더니 늦었다고 취소해 음식값을 물어내야 했다”며 “손님이 주소를 잘못 알려줘도 기사에게 화내고 취소되면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가 겪은 일은 더 황당하다. 정씨는 “아기가 자고 있어서 벨을 누르지 말라는 요청에 집 앞에서 노크했더니 왜 노크하냐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다”며 “주문 후 전화 안 받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게임해서 몰랐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 모르는 번호라 전화 안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님과 연락할 길이 없어서 물건을 가져가면 점주는 다시 가라고 요구하고, 손님은 늦게 왔다고 기사에게 항의한다”며 “그럴 때면 많이 힘들다”고 덧붙였다.
◆“조금만 배려를...”
한편 정씨는 자영업자들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한다. 그 역시 과거 자영업자였고 그가 말한 갑의 위치에서 배달 기사를 사용해 봤기 때문이다.
그는 “장사가 어려워 문 닫고 배달 일하지만 나처럼 준비 없는 자영업자가 많아 문제”라며 “최저임금, 장사가 안된다고 핑계 댈 건 아니다. 경쟁업체가 많은지, 상권이 괜찮은지 먼저 살피지 못한 사장들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배달 기사 되기 전 음식 주문하면서 늦는다고 타박도 해봤다”며 “‘천천히 오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하루 기분이 좋아진다. 배달은 사람이 한다.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해 보인다”고 당부했다.
사진·글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