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9-01-21 20:55:19
기사수정 2019-01-21 22:13:45
성급한 결정이었나 / IS 아직도 전투원 3만여명 보유 추정 / 시리아 내전 9년 수렁 발 빼기 힘들어 / 터키·쿠르드족 갈등 / 터키, 곧바로 쿠르드 민병대 공격 준비 / 美 경고 터키 반발… 마찰 뒤 수습협상 / 미국 중동 전략 부재 / FP " 터키와 외교·군사 협상 마무리 / 리더십 공백 채울 방안 마련을" 지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9일(현지시간) “우리는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승리했다. 우리의 위대한 젊은이들을 고향으로 데려올 시간이 됐다”며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선언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다. 대표적 친트럼프 인사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조차 “잘못되고 뜬금없는 결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16일 이런 의문은 더욱 커졌다. 시리아 북부 만비즈의 한 식당 근처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미국인 4명을 포함한 최소 16명이 사망한 최악의 사태가 터지면서다. IS는 선전매체 아마끄를 통해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숨진 미국인 4명 중 2명은 군인이었다. 미 지상군이 IS 격퇴를 위해 2015년 시리아에 들어간 후 발생한 미군 희생자 수가 종전 2명에서 순식간에 4명으로 늘자 안팎의 당혹감도 커졌다.
미 시사주간 타임은 “만비즈 사건은 미국이 이 가공할 적(IS)과의 잔인한 싸움에 얼마나 얽혀 있는지에 대한 냉엄한 진실 평가”라고 했고, CNN방송은 “철군 선언은 (IS 격퇴전) 막판 최악의 시기에 나왔다”고 지적했다. 동맹국 일원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17일 “다에시(IS의 멸칭)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성급한 철군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IS 세력은 위축되고 있지만…
시리아 내 IS 세력이 쇠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IS는 한때 시리아 북부와 동부 지역 대부분을 장악했으나 이후 세력권을 99%가량 잃은 것으로 평가된다. 17일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제 시리아에 남은 IS 근거지는 동부 유프라테스강 유역 계곡 1만5000㎢ 정도다.
미군 주도 국제동맹군의 IS 척결작전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동맹군은 이날 데이르에즈조르주 사파피예의 IS 지휘통제본부를 공습했다. 쿠르드·아랍 연합 시리아민주군도 인근 수사와 샤아파를 장악하면서 최근 이들 지역에서 IS 조직원 180명과 민간인 2000여명이 탈출했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집계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6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서쪽 안바르주의 알아사드 공군기지를 취임 2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해 미군 장병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러나 IS의 뿌리가 뽑혔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지난해 8월 발간된 미 국방부 조사관 보고서에 따르면 IS는 시리아와 이라크 내에 3만명가량의 전투원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전 세계에 퍼진 추종자들과의 네트워크도 끈끈하다. 시리아 미군 철수 방침이 IS에 그릇된 희망을 줘 부활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이라크 주둔 미군부대를 ‘깜짝 방문’했을 때 현지 지휘관들은 “미군은 IS 근거지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며 상세한 전황 설명을 했다고 CNN이 트럼프 측근들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고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철군’ 계획에서 한발 물러나 속도 조절을 시사하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를 재확인한 것, 아직 구체적 철군 로드맵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 등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또 다른 불씨
2011년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에 맞선 반정부시위가 촉발한 시리아 내전은 종파·종족·이념 갈등과 IS의 발호, 주변국의 간섭, 중동 지역에 이해가 걸린 강대국의 개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9년째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IS 격퇴전에 참여하는 나라만 79개국에 달한다. 갈등의 소용돌이에 한번 발을 담근 이상 쉽사리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미군 철수 결정은 특히 터키와 쿠르드족 간 긴장을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2014년 9월 국제동맹군의 IS 공습을 주도하면서 현지에 군사자문관들을 파견했는데, 이때 효율적인 전투수행 능력을 보여 자문관들 눈에 든 것이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였다. 문제는 터키의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계된 YPG를 터키 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이후 YPG는 시리아민주군의 주축을 이루며 이미지 제고에 나섰지만 터키 정부의 불신은 여전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미군이 YPG에 지원한 무기·장비가 PKK에 전달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미국은 “YPG와의 협력은 일시적, 업무적, 전술적일 뿐”이라며 “YPG에 제공한 무기는 미군 철수 시 전량 회수하겠다”고 약속하며 터키를 달래 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을 결정하자 터키는 YPG에 대한 군사작전 준비에 착수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터키가 쿠르드족을 공격하면 터키 경제를 파탄 낼 것”이라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양국 갈등이 고조되자 그레이엄 의원이 수습에 나섰다. 18일 터키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난 그는 “우리가 터키에 만든 문제를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터키∼시리아 국경에 ‘안전지대’를 설치하거나 YPG를 접경지역에서 후퇴시키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불분명한 중동 전략이 이 같은 혼선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FP는 “미국은 단일하고 명확한 시리아 정책을 세워 시행해야 한다. 질서 있는 철군을 위해서는 터키와 외교·군사적 협상을 마무리해야 하고 미군이 빠지면서 생기는 리더십 공백을 러시아와 이란이 채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나 부적절한 정책 조정, 일관성 없는 대통령의 트윗, 정부 고위 관료 간 불협화음이 중동 전체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