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해 로펌 손 안대는 '가사분야' 매달리는 개업 변호사

성범죄·이혼 사건에만 몰리는 ‘씁쓸한 세태’/ 특허·상표 등 대형 법무법인 전문 / 일반 변호사는 접근 어려운 영역 / 세무·변리사 등 유사직역과 경쟁 / 성범죄·이혼사건 수 증가 맞물려 / 전문 변호사 이름 활용사례 늘어 / 일각 “제도 취지 살려 기준 강화를” “대형 법무법인과 세무사 등 유사직역에 치이는 상황입니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개업 변호사들이 성범죄와 이혼, 가사분야에 몰리는 씁쓸한 단면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업계 전반에 불황의 그늘이 드리운 시점에서 개업변호사들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이후 한 해 1500명가량씩 쏟아지는 변호사와 대형 법무법인, 유사직역과도 힘겨운 생존싸움을 벌여야 한다.

21일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현황’에 따르면 2010년 전문분야 등록이 32건에 불과했던 형사법은 지난해 말 457건으로 10배가량 늘었다. 현재 대한변협이 개설·운영하는 전문분야 중 가장 많은 등록 건수다. 2010년에는 전문분야로 개설되지 않은 이혼 분야도 2011년 9건에서 지난해 222건으로 7년 만에 25배 늘었다. 가사법도 2010년 64건에서 지난해 254건을 기록했다.

대한변협은 2010년 변호사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전문변호사 제도를 도입했다.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통상 신청일 기준 3년 이내에 해당 분야 사건을 30건 이상 수임하고 14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 2018년 기준 변호사 1680명이 2361건의 전문분야를 등록했다. 변호사 1명당 2건 이내의 전문분야 등록을 할 수 있다. 반면 특허와 상표 분야는 지난해 각각 17건, 5건으로 2010년(27건, 6건) 대비 감소했다. 환경 분야도 2010년 10건에서 지난해 8건으로 줄었다. 법무법인 창과 방패 이민 변호사는 “형사법 전문분야 등록이 많아진 것은 성범죄, 가사법의 경우 이혼사건을 맡으려는 변호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성범죄와 이혼사건에 변호사들이 몰리는 현실은 절대적 사건 수 증가와 함께 대형 법무법인과 세무사 등 유사직역과 경쟁에 몰리는 개업 변호사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는 2008년 1만6129건에서 2017년 3만2824건으로 10년 새 두 배 이상 늘었다. 장윤미 변호사는 “성범죄와 이혼사건은 전혀 모르는 변호사로부터 법률상담을 받으려는 수요가 있다”며 “그만큼 변호사들 간 수임 경쟁이 치열한데 이럴 때 ‘전문변호사’란 이름을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업 변호사들이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강한 분야에서의 경쟁을 피하려다 보니 성범죄와 이혼사건에 몰리는 측면도 있다. 실제 전문변호사 등록이 줄었거나 크게 변하지 않은 특허·상표와 금융·조세 분야 등은 대형 법무법인의 전문분야다. 이들 대형 법무법인은 자체적인 조세·특허·금융 전담 부서 등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민 변호사는 “조세 사건의 경우 주고객인 기업들이 대부분 대형 법무법인에 사건을 의뢰해 일반 변호사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고 말했다.

유사직역과의 경쟁도 개업 변호사들을 성범죄, 이혼에 쏠리게 한다. 지난해 11월 여야 의원 12명은 경력이 2년 이상인 세무사에게 조세소송을 대리할 자격을 부여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7년 12월 세무사법 개정으로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도 폐지됐다. 변리사도 특허소송 대리권 확대를 노리고 있다. 장 변호사는 “특허나 상표 분쟁은 변리사와 직역 다툼이 큰 부분”이라며 “조세는 세무사, 금융은 회계사 등 유사직역의 침탈 이슈도 많아 개업 변호사들이 전문분야로 뛰어들기 주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대형 법무법인, 유사직역 등과 경쟁을 위해 대한변협이 전문변호사 제도의 취지를 살려 자격부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전문변호사 자격을 얻으면 영구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서혜진 변호사는 “전문분야 영역을 좀 더 세분화하고 등록 이후에도 대한변협 차원에서 지속적인 연수를 통해 변호사들의 전문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