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성추행한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한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사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습니다.
서 검사가 지난해 1월 말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관련 의혹이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여 만에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온 것인데요.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상주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안 전 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징역 2년은 앞서 검찰이 구형한 형량과 동일합니다.
재판부는 안 전 검사장이 무죄를 선고해달라며 검찰의 공소 내용을 반박한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안 전 검사장은 검찰 인사 실무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2015년 8월 과거 자신이 성추행한 서 검사가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되는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는데요.
서 검사를 좌천시킬 목적으로 검찰국장 권한을 남용해 인사 담당 검사들에게 인사 원칙과 기준에 반하는 인사안을 작성하게 했다는 게 공소사실 요지입니다.
안 전 국장은 자신이 서 검사를 추행한 사실이 없고, 그와 관련한 소문도 전혀 듣지 못해 인사보복을 할 동기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러나 재판부는 서 검사를 포함한 검찰 내부 인사들의 증언 등을 종합해보면,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를 추행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비위가 검찰 내부에 알려져 감찰관실에서 진상 파악에 나섰고, 이 사실도 안 전 검사장이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최교일 당시 서울북부지검장이 진상조사를 막으려 한 것도 인정된다는 판단도 내비쳐 주목을 받았는데요.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이 서 검사를 추행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던 상황에서 검찰 내외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문제가 불거지면 자신의 보직 관리에 장애가 있을 것을 우려해 인사 불이익을 줄 동기가 충분했다"고 밝혔습니다.
◆法 "안태근 전 검사장, 보직 관리 장애 우려해 인사 불이익 줄 동기 충분"
안 전 검사장은 당시 서 검사에 대한 검찰 인사는 원칙에 맞게 이뤄진 것이고,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 인사위원회의 심의·의결로 축적된 원칙과 기준에 비춰 보면, 서 검사를 통영지청에 배치한 것은 형평성을 기하려는 인사 제도를 실질적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서 검사가 받은 총장 경고 처분 등 평가 자료를 반영한 인사였다는 주장은 "장관 표창 등 상훈 사항은 긍정적인 요소로 참작하지 않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서 검사의 인사배치를 전주지검에서 통영지청으로 바꾸도록 안 전 검사장이 인사 담당 검사에게 지시한 점도 인정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는데요.
다만 안 전 검사장이 인사안 작성을 지시하면서 "서지현은 날려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서 검사의 주장은 구체적이지 않은 전언이라 인정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부연했습니다.
이밖에도 재판부는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고 "권한을 남용해 인사 담당 검사에게 인사 원칙과 기준에 반하는 인사안을 작성하도록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비위를 덮으려고 지위를 이용해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에게 부당한 인사로 불이익을 줬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가 발생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사유화하고 남용함으로써 공정한 검찰권 행사의 토대인 검찰 인사가 올바르게 이뤄지리라는 국민의 믿음과 검찰 구성원의 기대를 저버렸다"며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안 전 검사장의 혐의는 서 검사가 지난 1월 말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는데요.
이는 사회 각계의 '미투 운동'을 촉발한 계기가 됐습니다.
검찰 조사단은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를 추행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고소 기간이 지나 입건하지 못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1심 재판부 판단으로 사실이라고 인정받은 셈이 됐습니다.
양복 차림으로 선고 공판에 참석한 안 전 검사장은 재판장이 판결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조목조목 반박당하자 점차 낯빛이 어두워졌습니다.
구속영장까지 발부되자 안 전 검사장은 "이런 판결이 선고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항소심에서 의견을 다투겠다"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는데요.
그는 "검찰 인사에 대해 조금 더 배려 있게 판단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며 "평검사 전보 인사까지 보고받고 신경 쓰는 검찰국장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지난해 1월29일 서 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피해사실을 이야기하기 전까지 서 검사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알지도 못하는 검사가 인사보복을 당했다고 하니 당시 검찰과장이던 검사에게 물어보긴 했으나 말을 맞춘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서지현 "정의는 반드시 승리…당연한 결과"
서 검사는 안 전 검사장의 유죄 판결에 대해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걸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서 검사는 24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 전 검사장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며 소회를 밝혔는데요.
그는 "검사가 진실·정의를 얘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던 시간"이라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진실은 밝혀진다는 걸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서 검사는 안 전 검사장의 재판 과정에서 '실질적 피해자' 지위를 인정받아 검찰의 수사기록을 열람·복사했는데요.
서 검사는 사건기록을 살펴보면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 강해서인지 출세 욕구가 너무 강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검사가 명백한 허위 진술을 아무렇지 않게 너무 많이 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
|
| 서지현 검사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인사보복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안태근 전 검사장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치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최근 검찰은 성범죄 수사에서 “사건의 전말이 명확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무고 여부에 대해 수사하는 것을 보류하라"는 지침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성범죄 처벌이 강해짐과 동시에 무고 사례의 발생확률이 늘어난 만큼, 밝혀진 무고 사례에 대해서 만이라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미투 운동은 옳고 정당하며 널리 확산해야 합니다. 마땅히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하며, 가해자는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요.
하지만 '허위 미투'나 무고는 경계해야 합니다. 설령 나중에 허위로 밝혀진 이후에도 무고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성폭력 피해 폭로 늘어나는만큼 무고죄 실형 비율도 높아져야"
무고죄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접수된 전체 사건 건수는 증가하는 추세지만, 2017년 이들 10건 중 7건 가량은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아 재판에 넘기지 않고 종결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사실 폭로 및 고발이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무고죄가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배경입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검찰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무고죄 관련해 검찰에 접수된 전체 사건 수는 2011년 8541건에서 2017년 1만475건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고소·고발이 있는 경우와 검찰이 자체적으로 인지한 경우를 모두 포함한 수치입니다.
2015년에 1만 건을 처음으로 넘어섰던 무고죄 관련 접수 사건 수는 2016년 9937건으로 줄었다가 2017년 다시 1만건을 넘었는데요.
무고죄는 타인에게 형사처벌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수사기관 등에 허위의 사실을 신고할 때 성립하는 범죄로, 법정형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이가운데 기소되지 않고 종결된 사건이 대부분을 차지했는데요.
2011년 4792건, 2012년 5528건에서 점점 늘어 2016년엔 6453건, 2017년 7019건까지 급증했습니다. 이를 비율로 보면 2011년 56.2%에서 2016년 64.8%로 줄었다가 2017년 68.7%로 올라간 것입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검찰 인지가 아닌, 별도의 고소·고발로 인해 접수된 사건 가운데 불기소가 늘면서 전체적인 불기소 비율이 오른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전문가들은 허위 고소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명예훼손을 당하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진 게 무고죄인데, 피해 사실을 폭로하려는 사람의 입막음 용도로 무고죄가 악용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세계닷컴>세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