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 ‘징용기금’ 비상식적 취급한 정부… 해결 의지 있나

“정부와 양국 기업이 참여하는 기금이란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국 정부와 한·일 기업이 참여하는 피해자 지원 기금 마련이 청와대 반대에 부딪혀 중단됐다는 보도에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보인 반응이다. 3자 기금 자체를 ‘비상식적’이라고 단정한 청와대 대변인 언급은 성급한 느낌이 없지 않다.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가족들이 미쓰비시 중공업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피해자 지원 기금은 실타래처럼 꼬인 한·일 갈등의 대안적 해결책으로 외교가와 학계에서 자주 거론된다. 국가 간 조약으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 체결됐다는 실체적 진실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이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적 정의를 절충한 제안이다. 중·일 수교에도 일부 시도된 방식으로, 진정한 사과가 전제되느냐 여부가 중요하지만 무조건 비상식적이라고 치부될 것은 아니다. 양국 관계를 풀어보려는 전문가들의 고언을 비상식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청와대 대변인 언급으로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한·일 갈등 타개에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하고 있을까.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지난해 11월부터 국무총리실이 주관하는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를 실질적으로 치유하면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제반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면밀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TF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각각 문의하면 총리실은 외교부가 주관부처라고 말하고, 외교부는 총리실 중심으로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과도한 대응을 자제하는 것이 외교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게 TF의 존재 이유일 수는 없다. 3개월이 지났으면 정부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해왔고 어떤 점을 검토하고 있다는 등의 얘기가 나와야 한다. 추측이 무성한 것도 정부가 가시적인 해결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일본 우파 집권세력이 불을 지르고 있는 한·일 갈등에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일 관계는 당면한 북핵 문제 해결을 포함해 동북아 평화 전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 고리다. 향후 북·일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도 거울이 될 수 있다. 번지는 불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는 이유다.

홍주형 외교안보부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