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계 습지의 날’ 기념하는 이유

1971년 2월2일 이란 람사르(Ramsar)에서는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 채택됐다. ‘람사르협약’이라고 불리는 이 협약은 자연자원과 서식지의 보전 및 현명한 이용에 관한 최초의 국제협약이다. 세계는 1997년부터 매년 이날을 ‘세계 습지의 날’로 정하고 람사르협약 채택을 기념하는 동시에 습지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고 있다.

습지는 글자 그대로 축축하고 습기가 많은 땅이다. 습지는 음습하고 어두운 이미지와는 달리 수많은 야생생물이 살아가고 번식하는 생명의 땅이다. 전 세계 생물종의 40%가 습지에 기대어 살고 있으며 10억명이 넘는 사람이 습지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습지는 주변의 오염된 물을 흡수해 정화시키고 뛰어난 탄소저장 능력으로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데도 기여한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이렇듯 그 유용함과 가치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안타깝게도 습지는 빠르게 훼손되고 있다. 전 세계의 습지 중 50%가 사라졌고, 우리나라도 최근 5년 사이에 12%의 습지가 소실되거나 면적이 줄었다. 습지의 훼손은 대부분 농경지나 산업단지 조성 등 인간의 개발행위에 기인한다. 한 번 손실된 습지를 복원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에 람사르협약은 회원국에게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 한 곳 이상을 지정해 관리하고, 습지를 자연보호구로 지정하는 등 습지의 생태학적 특성 유지와 현명한 이용을 위한 노력을 의무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01번째 람사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람사르 습지 1호로 인제 대암산 용늪을 등록한 이래 창녕 우포늪, 고창·무안 갯벌, 태안 두웅습지 등 현재까지 22개의 람사르 습지가 등록돼 관리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의 발의로 ‘람사르 습지 도시 인증제’가 채택된 후 처음으로 작년 10월 제주, 순천, 창녕, 인제를 포함해 전 세계 7개국 18곳이 첫 인증을 받았다. 작년 람사르총회에서는 한국이 제안한 ‘습지 생태계 서비스 간편평가도구’가 만장일치로 채택되기도 했다. 적은 비용으로 쉽고 빠르게 습지의 생태와 가치를 평가할 수 있어 개발도상국의 습지 보전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환경부는 각종 개발압력에 노출된 습지를 체계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습지보전정책을 대폭 강화할 예정이다. 습지생태계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해 보전가치가 있는 다양한 유형의 습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관리하는 한편, 보호지역 내 훼손지 복원사업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아울러 습지가 위치한 지역의 개발 사업의 경우, 환경영향평가 시 중점평가 대상에 포함해 습지 훼손이 최소화되도록 유도하고, 훼손이 불가피하면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습지를 조성하도록 해 습지의 총면적이 줄어들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매년 2개소 이상을 람사르 습지로 등록해 국내 습지의 생태적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람사르 습지 도시 인증제가 국제사회에 정착돼 세계 습지 보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류·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람사르 습지 1호인 용늪은 승천하려는 용이 잠시 쉬었다 간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보호하지 않으면 전설 속으로 사라질 수많은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 비단 용늪뿐 아니다. 대부분의 습지가 멸종위기에 내몰린 동식물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피난처가 되고 있다.

2월 2일, 세계 습지의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자. 습지가 품은 수많은 생명과 함께, 우리 역시 습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공존의 미래를 그리는 날이기를 기대해 본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