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9-02-07 07:00:00
기사수정 2019-02-07 10:27:36
창간 30주년 기획 ‘우리의 환경은 평등합니까’/2018년 中 ‘폐기물 수입 금지’ 이후/ 韓·美·英 등 각국 쓰레기들 유입/
소외 지역서 빈번한 ‘환경 피해’/‘정의로운 해법’ 대해 고민할 때
‘우리의 환경은 평등합니까.’
세계일보가 창간 30주년을 맞아 사회에 던지는 화두다.
지난달 16일 말레이시아 서쪽 클랑의 플라우 인다(Pulau Indah. Pulau는 섬, Indah는 아름답다는 의미). ‘아름다운 섬’ 플라우 인다는 섬 이름이 무색하게 전 세계 폐기물에 조금씩 잠식돼 가는 중이었다. 각국 쓰레기가 산을 이룬 이곳에 우리나라 쓰레기도 뒤질세라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후레쉬컷 파인애플, 스위트망고, 무뼈 닭발, 후랑크 소시지…’
“여기 적힌 것도 한글 맞죠? 이 회사는 한국에서 유명한 회사인가요?”
헹키아춘 그린피스 말레이시아 활동가는 바닥에 떨어진 비닐포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국내 대표 제과업체가 ‘다양한 맛을 한 팩에’라고 강조한 8종 과자 묶음포장이다.
쓰레기 더미 주변만 대충 훑었는데도 한글이 선명히 찍힌 비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기자가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무렵 필리핀에서는 우리나라가 불법 수출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다시 한국행 배에 실려 막 출항한 참이었다. 이 쓰레기는 3주 동안 태평양을 건너 지난 3일 평택항에 도착했다. 7일 환경부와 평택세관은 컨테이너를 열어 쓰레기를 조사할 예정이다. 정부는 불법 수출업체의 위법행위를 가려 사건을 검찰에 넘길 방침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단지 돈에 눈이 먼 수출업체의 양심이 문제였던 걸까.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일본 각국의 쓰레기는 왜 수천 ㎞ 떨어진 플라우 인다까지 와서 버려졌을까.
지난해 국내외 폐기물 업계는 커다란 파도를 만났다. 중국이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금지한 뒤로 전 세계 쓰레기는 갈 곳을 잃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수거업체들이 폐비닐 수거를 거부했다. 당장이라도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세상은 전과 같이 돌아간다.
쓰레기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처럼 더 약한 곳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감시가 소홀하고, 여론의 발화력이 낮은 곳, 혹은 먹고살기 위해 오염물질이라도 감수하고자 하는 곳으로 흘러갔다. 찾아보면 중국 말고도 쓰레기가 숨어들 곳은 여전히 많았다.
모두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공평한 환경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환경 피해는 소외지역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나며 환경 혜택은 기득권층에 더 많이 돌아간다. 우리가 ‘해결했다’고 믿는 환경문제 중에는 눈에 안 띄는 사각지대로 전가된 사안도 적지 않다. 환경을 바라볼 때 ‘정의로운 해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클랑(말레이시아)=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