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북, '한미동맹 약화' 기대 버리고 진지하게 협상 임해야"

세계일보와 자매지 미국 워싱턴타임스가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공동 주최한 ‘2019 한반도평화 국제콘퍼런스’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9일 세계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이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에 대해 “북한이 이번 협상에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는지 여부가 회담 성과를 판가름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이제원 기자
2004∼2005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내고, 2007년까지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를 역임한 그는 2차 정상회담을 비롯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한·미 동맹관계가 굳건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이 인지하고, 이를 흔들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2년간 이뤄지고 있는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만난다는 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을 북한도 알아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과 이에 따른 여러 협상에 북한이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오는 2월 27∼28일 있을 2차 정상회담에 대해 전망한다면.

“매우 힘든 협상이 될 것이라고 본다. 사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일각에서는 실망감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의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속도에 비해 느렸고, 잘 따라오는 듯 보이지 않았다. 이번 2월 정상회담에서 북·미 양국은 그동안 (교착국면에 빠져)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새로운 내용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북한 측과 접촉을 했고, 이번 접촉을 계기로 북한은 미국이 어떤 식의 진전을 바라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됐을 것이다. 지금은 후속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가 2차 정상회담 전 실무접촉 장소를 판문점이 아닌 평양으로 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는지.

“만난 장소가 어디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비건 대표와 그의 새로운 파트너인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만났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북한은 지난 4∼5개월간 비건 대표를 만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웨덴에서 북측과 접촉했고, 새로운 협상 파트너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과정에만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

-비건 대표 외에도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북한 정찰총국 사이에도 세부 협상이 진행된다는 설도 있다.

“가능성은 제기할 수 있지만, 비건 대표가 단순한 조정만 했을 것이란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실무회담에서 분명 세부적인 내용을 논의했을 것으로 본다. 사실 정상회담 전 합의할 내용에 대해 의견을 모으지 못한다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 나서서 어디에 의자를 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내용(contents)이 없는 상황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최근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근 2달 정도 긴박한 상황이 진행됐다. 이전 회담 때와 변화가 감지되나

“지난 2달도 이전 협상과 큰 차이를 보였던 것으로 보긴 어렵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트럼프 정부는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베트남에서 열리는 2차 정상회담까지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 로드맵은 매우 분명한 입장을 담은 것이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시간만 낭비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나는 이 경우가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실행 이전에는 경제제재를 완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상응 조치에 대해 먼저 거론하고 있지만, 이런 태도가 협상에 현실적인지는 알 수 없다. 이번에 비건이 어떤 상응조치 제안을 받아왔는지에 따라 향방이 달라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열린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담소하며 산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차 정상회담 장소가 ‘베트남’으로만 발표됐을 당시 하노이와 함께 다낭에서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낭은 미국이, 하노이는 북한이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낭이 아닌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장소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내가 경험한 북한은 항상 자신들의 대사관이 있는 곳에서 협상하고 싶어 했다. 상황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다. 이런 문제가 정상회담 장소를 하노이가 되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장소에 주목하기보다는 오늘날 북한이 어떤 준비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난 1차 정상회담 때는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도 1차 정상회담보다 신중하다는 얘기가 있다. 트윗도 줄어들었다. 이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봐야 하는가?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2번째 쇼’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2차 회담에서는 1차 회담에서 나오지 않은 무엇인가를 내놓기 위핸 접근방법을 보일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이런 형태의 협상은 진지하게 고려한 뒤 이뤄진 협상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즉 북한은 어떤 방식으로든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 하는 시도를 협상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국과 미국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북한은 이를 사실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앞서 당신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이유가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북한은 자신들이 핵을 보유함에 따라 (미국에) 위협을 가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핵 보유)으로 한반도에 주둔 중인 미군을 몰아낼 수 있다고 여긴다고 보는데,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주한미군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미국은 주한미군이 북한을 위협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누차 밝혀왔고, 이를 문서로 명기했으며, 회담에서도 수차례 언급했다. 북한도 이 부분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주한미군에 대해 이야기 하니, 최근에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진행됐다. 일요일에 가서명이 있을 예정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오랜 기간 진행됐던 것이다. 무엇인가 합의가 이뤄졌다면 그것은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협상에 합의를 이뤘다는 것은 한·미 동맹이 오랜 기간 이어온 관계를 더 굳건히 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런 굳건한 동맹은 (한반도평화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번 분담금 협상이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졌지만, 두 협상은 서로 별개의 것으로 각각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2차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 것으로 보나

“북한은 그동안의 협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미 동맹 약화를 바랄 것이다. 이것이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큰 그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비핵화에 따른 상응조치로 주한미군에 대해 일정한 조치를 하길 바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확고하게 동맹을 유지하려 하며, 한국도 미국과 함께여야 한다. 무엇에 대해 협상을 하든, 협상 시에는 언제라도 협상장 밖으로 걸어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협상 상대방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번 1차 정상회담 때와 같이 그냥 정원을 걸으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진을 찍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제재가 약화할 것으로 전망하나

“그것은 북한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렸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 조치가 확실해지기 이전에는 제재완화를 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재완화가 신뢰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의 관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내 관점은 신뢰가 있으면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도다”

-문 대통령의 중재가 북·미 관계 진전을 끌어냈다는 평가가 있다. 2017년 ‘화염과 분노’를 거론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새 ‘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까지 얘기했다.

“문 대통령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트럼프가 사랑에 빠졌다고 코멘트했을 때는 놀라웠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가수 티나 터너의 노래 제목인 ‘사랑이 그것과 무슨 관계인가(what′s love got to do with it)’라고 얘기하고 싶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당신은 다소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가능성에 대해 낙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의견도 있다.

“협상에서 가능성이 항상 0%라는 것은 없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다고 기회가 다가왔을 때 이를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도 북한과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나는 1차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는 회의적 입장이다. 더 진지한 태도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2차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종전선언을 하는 것은 매우 좋고, 이를 실행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종전선언에 담긴 내용을 잘 봐야 한다. 주한미군에 대한 부분이 어떻게 담길지가 중요하다. 종전선언이 미국과 북한의 새로운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는 수단이라는 믿음 하에 진행된다면 이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감축에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는 좋지 않은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된다. 북한은 한·미 동맹 약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보는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보지만 나는 이것에 회의적이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시 주석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미국 외교관들은) 중국과 일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하지만 나는 중국과 대립해 일하는 것이 더 힘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상회담 전 협상에서도 중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항상 양자 간 협상에서 결론을 얻으면 다자간 협상의 성과를, 또 다자간 협상의 성과가 나오면 양자 간 협상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곤 한다. 나도 10여년 전 6자 회담에서 다자간 결과를 얻어내자 ‘양자 간 성과는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식으로 협상이 되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지, 그 형태는 크게 신경 쓸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미국 정보기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런 엇박자에 대해 어떤 시각이 있는가.

“정보기관은 북한이 핵을 절대로(never)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절대로’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나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은 북한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내비쳤다. 북한은 자신들을 향한 비관론을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보기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톤이 달랐다. 많은 미국 국민도 정보기관을 트럼프 보다 신뢰할 것으로 본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부터).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는 남·북·미·중 4개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향후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 조언해달라

“한국 정부는 북한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북 간 소통 라인을 이용해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만난다는 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드문 기회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상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종류의 메시지든 내놔야 한다. 그것이 어떤 식의 메시지일지 나도 조언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북한에 이번 일이 매우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그들도 트럼프가 정상회담 뒤 좌절해서 그냥 협상장을 나가버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한국이 조언할 수 있을지, 중국이 그 역할을 할지는 알 수 없다. 한국 정부도 함께 협상에 나서기를 바란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