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9-02-14 10:00:00
기사수정 2019-02-13 20:59:27
(19)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 하트 모양의 땅 동·서문명 공존 / 탱크의 포격에 스타리 모스트 강에 잠긴 그날 / 온 나라가 통곡 유네스코 지원 옛모습 되찾아 / 다리 위의 청춘 강물 향해 ‘풍덩’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에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모스타르(Mostar)까지는 350Km 거리로 4시간을 넘도록 꼬박 운전했다. 해안 길을 따라 남쪽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아름다운 풍광이 어둠에 가려지면서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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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Mostar).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네레트바 강 깊은 계곡에 우뚝 솟은 역사적인 도시로, 옛 터키 양식 주택과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라는 오래된 다리로 유명하다. |
호텔에 전화하여 늦은 밤 도착할 거라 미리 이야기해두었지만, 야간운전 탓에 여정이 예상보다 더 늦어졌다. 마음은 초조한데 내비게이션은 엉뚱한 길로 안내한다. 한 치 앞 풍광이 보이지 않으니 이 길이 맞는 길인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다른 방도가 없어 낭떠러지 같은 길을 따라 나선다. 비탈진 길을 달리는 차는 몹시 덜커덩거리며 흔들린다. 퉁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언덕 아래 도착하니 옛 철길 같은 선로 옆이다. 다행히 불빛들이 모여 있다.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가보니 예약한 호텔이 지척이다. 걱정했던 것보다 길을 잘 찾은 셈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호텔 안으로 들어서니, 아름다운 아가씨가 걱정했다며 반갑게 맞이한다. 순간 긴장감이 풀리고 굳어진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려는 찰나, 멈칫했다. 프런트 데스크 뒤 사무실에서 나온 남자분 하얀 윗옷에는 한쪽 팔이 없는 것이다. 당황한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보였는지 아가씨가 아빠라 소개한다. 밝게 웃으며 ‘모스타르의 역사를 알지?’라며 내 눈을 맞추고 서류를 작성한다. 아름다운 중세도시 모스타르를 할퀴었던 내전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놀라움과 피곤함으로 얼른 열쇠를 받아들고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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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 관광지. 도시 전체가 오스만 제국 이전 건축, 동오스만제국 건축, 지중해와 서유럽 건축양식 등 여러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
다음 날 아침, 깊은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여니, 지난밤에는 보이지 않던 고즈넉한 석조건물들의 중세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간밤 본 가족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아침식사를 한다. 가족이 경영하는 작은 호텔이라 그런지 더 살뜰하다. 아버지의 환한 웃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옷소매도 잊게 한다.
유럽 동남쪽에 있는 하트 모양의 땅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동서양 문명이 만나고 충돌하는 길고 매혹적인 역사를 품고 있다. 우리에게 ‘보스니아’로 익숙한 이 나라는 5만㎢가 조금 넘는 규모로, 물을 의미하는 고대 인도유럽어 ‘보사나(Bosana)’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동쪽과 남동쪽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북쪽과 서쪽은 크로아티아와 접한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민족보다는 지명을 지칭하는 말로, 보스니아인·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의 세 민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중심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인 중심의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사실상 나뉘어 있다고 한다. 옛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여섯 개 공화국 가운데 하나였으나 1990년대에 유고슬라비아 전쟁 시기에 독립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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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오스만 제국 지배를 받던 동안에 건설된 것으로 푸른 강을 건너는 아치형 석조 다리이다. 1993년 11월 트리아티아군의 대규모 공격에 심히게 손상됐다가 이후 폭격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
모스타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있는 가장 중요한 도시이다. 네레트바 강 깊은 계곡에 우뚝 솟은 역사적인 도시로, 옛 터키 양식 주택과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라는 오래된 다리로 유명하다. 15, 16세기 오스만 제국 전초기지로 건설된 모스타르는 19, 20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꼽히는 스타리 모스트는 오스만 제국 지배 하에 건설된 아치형 석조다리이다.
아름다운 다리는 1993년 11월 트리아티아군의 대규모 공격에 심하게 손상됐다가 이후 포격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부는 다리가 무너진 9월 11일을 국가 기념일로 정했으며, 유네스코 지원으로 복원된 다리는 2005년 세계역사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다리 중심으로 도시 전체가 오스만 제국 이전 건축, 동오스만제국 건축, 지중해와 서유럽 건축양식 등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훌륭한 본보기라고 한다. 특히, 오늘날 국제적인 협력과 다양한 문화적·민족적·종교적 공동체의 공존과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1993년, 탱크 포격으로 다리가 붕괴되었을 때 현장에 있었다는 호텔 주인 아저씨는 내전 때 다친 부상만큼 당시를 심장을 찢는 아픔이라고 표현했다. 도시와 나라 전체를 상징하는 아픔은 네레트바 강 바닥에 잠긴 다리 조각과 함께 눈물로 묻었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을 받으며 지나간 과거로 이야기되지만. 이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는 ‘심장에 가둔 돌’이라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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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지원으로 복원된 다리는 2005년 세계역사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4m 높이의 강으로 뛰어 내리는 대회는 1664년 처음으로 개최되어 다리가 복원된 지금까지 계속된다. |
다리와 함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도시를 걷는다. 빛나고 밝은 톤 돌다리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다리 위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용감한 사람들이 강 아래로 몸을 던진다. 강 아래에서 탄성과 환호 소리가 들리고 용감한지 무모한지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의 시도를 말리거나 부추기며 시끌벅적하다. 한창 웅성거리던 소리를 잠재우는 큰 물소리에 이어 “와아!” 하는 탄성들이 들린다. 누군가 또 강으로 뛰어내린다. 대회는 아니지만 여름철 다리 위에서는 젊음과 역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실제 24 높이의 강으로 뛰어내리는 대회가 있다고 한다. 1664년 처음으로 개최된 대회는 다리가 복원된 지금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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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바자르. 가파른 언덕에 구불구불한 좁은 도로를 따라 이어진 옛 시가지는 다양한 문화적·민족적·종교적 배경을 보여준다. |
진초록빛 강물이 ‘풍덩’거리는 소리와 함께 빛에 반사되는 물보라가 하얀색 다리 위 돌담길 색깔을 다양하게 바꿔준다. 하루 동안에도 여러 차례 다른 색상을 띈다는 다리는 세월의 무게를 잊고 사람들을 건네준다. 가파른 언덕에 구불구불한 좁은 도로를 따라 이어진 옛 시가지는 다양한 문화적·민족적·종교적 배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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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에서 만난 사람들. 도시에는 무역소와 공예품 건물들이 자리하고 특별히 목재나 석재로 만들어진 상점과 석조 창고들이 길을 따라 들어서 있다. |
구시가지를 벗어나 모스타르 여러 볼거리를 찾아 걸었다. 돌로 된 도시에는 무역소와 공예품 건물들이 자리하고 특별히 목재나 석재로 만들어진 상점과 석조 창고들이 길을 따라 들어서 있다. 강가 옆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가려진 돌담의 역사를 생각하며 해지는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