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 세지는 국민연금… 꺼지지 않는 관치논란 [뉴스+]

주총 시즌 앞두고 의결권 강화에 우려 시선 / 자산운용사에 위임한다지만… / 운용사들과 사전 의견조율 예상 / 자율적 의결권 행사에 회의적 / 주총 전 찬반 입장 공개 / 위탁 운용사 다른 입장 어려워 / 다른 기금도 동조 가능성 높아
국내 자본시장에서 비중이 가장 큰 국민연금이 자산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하는 제도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국민연금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자산운용사들이 의결권을 위임을 받더라도 제도 취지와 달리 사실상 국민연금 행동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오는 15일부터 자산운용사들에게 투자 일임 형태로 위탁 운용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위임할 수 있다.

그동안 자산운용사 등 투자 일임 업자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등을 제외하고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투자자로부터 위임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가능해졌다.

본격적인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지만 의결권을 위임받는 자산운용사들은 자율적인 의결권 행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의결권 위임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아직껏 마련되지 않아 자체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123조9000억원 규모의 주식 투자 중 3분의 1을 여러 운용사에 위탁 운영하고 있어 특정 기업에 대한 의결권도 여러 운용사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운용사들 의견이 갈리면 해당 기업은 이들의 의결권을 거부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을 세세하게 만들어 주거나 국민연금이 사전에 조율하지 않는 이상 여러 운용사의 의견을 통일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위탁의결권을 완전 자율로 맡길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며 “사실상 국민연금의 입장에 맞춰 자산운용사들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최근 국민연금이 지분율 10% 이상이거나 국내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 중 보유 비중이 1% 이상인 기업에 대해 주총 사전에 안건 찬반 입장을 공개하기로 한 것도 운용사로서는 부담이다. 지금까지는 주총이 끝난 뒤 의결권이 어떻게 행사됐는지를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이 찬반 입장을 밝힌 상태에서 운용사가 다른 입장을 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학연금, 교직원공제회 등 다른 기금도 국민연금 입장을 따를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항상 옳은 방향만 제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정부 입김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공단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다. 여기에 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차관 4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관치주의’ 성향을 띠기 쉽다.

국민연금은 2014년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 9.1%만 안건에 반대했으나 지난해 반대표 행사율이 18.8%로 높아지는 등 의결권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으로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네이버 등 10대 그룹 상장사의 70%가 해당한다.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 중 57조3000억원을 국내 32개 자산운용사에 위탁 운용하기로 한 것도 ‘연금사회주의’ 우려를 의식해서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총수와 관련된 안건이나 이사진 연임에 관련해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하면 기업 입장에선 꼼짝없이 손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