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머이의 밤’ 이후 급성장… 심각한 부패 또 하나의 과제 [신통일한국으로 가는 길]

〈1부〉 체제전환국을 가다 '베트남 개혁·개방' 어제와 오늘
국립역사박물관 개혁·개방 전시/ 개방 확정한 공산당 대의원 토론 사진/“국민 모두 함께 개혁 결정” 자부심 키워/ LG전자 공장 ‘전자산업 출발’로 기록
부패·공기업 방만경영 개선 시급/ 뇌물 등 부패지수 180개국 중 107위/ 계열사 300개 국영기업 비나신 '디폴트'/ 기술 미비 '가공조립형 수출' 한계 지적
“베트남의 개혁정책은 한 인물이 이끈 것이 아닙니다. 정부와 공산당, 베트남인 모두가 함께한 것입니다.” 국립역사박물관 개혁·개방 전시실을 찾아 무심코 던진 질문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와 같은 대답을 기대했지만, “우리가 함께했다”는 다소 맥빠진 답변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고속성장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국립역사박물관 과거·미래·현재가 공존… 소박하고 인상적인 꾸밈없는 전시실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은 29개 전시실 중 3개 전시실에서 개혁·개방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전시실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중국 선전(深?) 개혁·개방 박물관을 찾았을 때의 화려하고 거대한 느낌과는 크게 대비됐다. 그만큼 더 자연스럽고, 내적인 당당함도 느껴졌다. 첫 번째 전시실 입구 정면에는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당 대회 당시의 격렬했던 토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있다. 당시 1129명의 대의원이 참석해 당대회 기간 격렬한 토론을 벌인 끝에 경제개혁 기본방침을 확정하고, 도이머이를 천명했다. 베트남 역사의 흐름을 바꾼 도이머이의 밤을 그들은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LG전자가 1998년 베트남에 세운 공장에서 처음 만들어진 34인치 텔레비전 브라운관 공장 내부 사진이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이 사진을 가리키며 “베트남 전자사업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개혁·개방 자료는 거의 1만점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일부만 3곳 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 그는 “1986년 제6차 당대회부터 그 이후 공업화 과정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1991년 정부 차원에서 도이머이 정책 평가와 분석을 위해 각종 개혁정책 기록물과 자료를 보관하고 베트남을 지원한 각 국가와 정부 간 자료도 관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LG전자 TV공장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에 전시된 1998년 한국 LG전자가 베트남에서 세운 공장에서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생산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베트남에서는 당시 처음 34인치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만들었다.
◆심각한 부패는 경제의 잠재적 불안 요인… 공기업 방만경영과 수출구조도 개선해야

베트남이 외적으로는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미 여러 차례 경제 불안과 구조적 문제가 지적되곤 했다. 특히 부패 문제는 건전한 경제성장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간주된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어느 나라나 있을 수 있는 부패 수준을 넘어섰다”고 진단하면서 “다른 모든 나라와 같이 이런 부패 문제는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 분위기·국민 의식 수준·제도적 문제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는데, 어느 순간 쇄신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진단했다.

베트남 출장 기간 중 만난 한국인 기업가 A씨도 베트남 소방 당국의 ‘뒷돈’ 요구로 사무실 이전에 애를 먹고 있었다. 같은 건물 내 위층으로 이사해야 되는 상황에서 소방 당국의 소방 허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내부 구조는 위층이나 아래층이나 비슷해서 특별히 추가할 사안은 없었지만, 실내 스프링클러 등 소방기기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수정 도면’ 승인을 위해서는 1000만원 정도가 별도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A씨는 “인허가 쪽은 특히 돈을 주지 않으면 서류를 아예 접수하지도 않는다”며 “돈을 줘야 일이 진행된다. 베트남에선 일반적인 일”이라고 했다.

실제로 베트남의 부정부패지수는 상당히 높다. 2017년 세계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전 세계 180개국 중 107위다. 인근 필리핀(111위), 미얀마(130위), 라오스(135위), 캄보디아(161위)에 비하면 낮지만, 심각한 부패로 유명한 브라질(96위)과 비교해보면 심각성의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도이머이 발표’ 역사 바꾼 순간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 개혁·개방 전시실에 전시된 이 사진은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6차 당 대회에서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를 발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밖에도 물가 급등과 대외의존 심화, 무역·재정 쌍둥이 적자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특히 2010년 비나신(Vinashin)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상징하는 국영기업 방만경영과 부실은 심각하다.

비나신은 베트남 정부가 1996년 조선업 육성을 목표로 전국의 조선조합을 통합해 설립한 국영기업이다. 2000년 이후 세계 조선경기 호황으로 매년 연평균 54.5%의 매출액 성장을 기록한 초우량기업이었다. 2008년엔 건설·금융·호텔업 진출 등 계열사만 300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방만경영이 부실경영으로 이어졌고, 총부채가 500억달러를 넘어섰다. 때마침 조선경기 침체로 신규 수주가 감소하면서 디폴트를 선언했다.

또 외국인 투자기업과 순수 국내기업 간 연계성이 약해 생산기술이나 경영 노하우 등 이전이 제한적이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베트남은 수출이 급증하지만 무역수지 적자가 함께 증가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전형적인 가공조립형 수출구조인 것이다. 2017년 해외투자 기업 중 해외 투자자가 100% 지분을 소유한 기업 비중이 80% 이상이며, 해외투자자와 베트남 현지기업 합작투자는 7%에 불과하다. 베트남은 ‘2020 부품·소재산업 개발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통해 각종 우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호아락 하이테크 파크 추진도 같은 맥락이다. 또 공기업 효율화를 위해 2020년까지 국가 전략산업(국방·공안·원자력 등)을 제외한 137개 국영기업을 민영화할 계획이다.

하노이=글·사진 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