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9-02-21 18:42:28
기사수정 2019-02-21 21:58:46
대법 30년 만에 판례 변경 파장 / 각계 전문가 의견수렴 숙고 후 결론 / 한국인 평균 생존연령 증가도 반영 / 고령자·노인 65세 규정도 근거 들어 / 정년 사회적 논의 촉발 가능성 커져 / 유사직종도 연장 논의로 이어질 듯
21일 대법원이 만 60세인 육체노동자의 ‘노동가동연한’을 만 65세로 늘리기로 한 결정을 계기로 정년 연장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더욱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보험료 인상 등 보험업계를 비롯한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의 이날 결정은 30년 전과 달라진 사회·경제적 구조, 생활여건이 향상된 점, 은퇴 연령 및 생존 나이가 늘어난 점 등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던져준 사회적 숙제를 풀어야 하는 시점과 맞닥뜨렸다고도 볼 수 있다. 노후의 행복한 삶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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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이 10일 경남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남 노인 사회활동지원 활성화 대회`에 참가한 가운데 어르신이 실버택배 전용 장비인 전동 자전거를 시승해보고 있다. CJ대한통운 제공 |
◆30년 만의 변화…“몇살까지 일할 수 있는 나이인가”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지난해 11월 각계 전문가와 유관 기관의 입장을 수렴하고 공개변론을 했다. 이날 나온 다수 의견은 30년 전에 비해 크게 변한 시대상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데 무게를 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노동가동연한을 만 65세로 바꾸는 결정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이 급속하게 향상·발전하고 법 제도가 정비·개선됨에 따라 1989년 판결 당시 경험칙의 기초가 됐던 제반 사정들이 현저히 변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평균적으로 한국인의 생존연령이 2017년 남성은 만 79.7세, 여성은 만 85.7세로 늘었고, 법정정년도 만 60세로 연장된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실질 은퇴 연령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남성은 만 72세, 여성은 만 72.2세로 조사됐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각종 사회보장 법령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고령자 또는 노인을 만 65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는 점도 대법원은 노동가동연한을 높여야 하는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하급심마다 노동가동연한을 다르게 적용하면서 적잖은 혼선이 빚어졌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노동가동연한이 만 65세로 정리됨에 따라 향후 손해배상액은 이 나이를 기준으로 산정될 예정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이번 판결은 새로운 경험칙에 따라 만 65세로 인정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논란을 종식시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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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왼쪽 두번째)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노동가동연한 상향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위해 앉아 있다. |
◆정년 연장 논의 촉발 예상, 임금체계 개편 등 변화 불가피
이번 결정을 계기로 곧바로 정년이 65세 이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국회 법률 개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년 연장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더욱 가열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판결 자체만으로는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이 증가한 것이지만, 향후 유사 직종의 정년 연장 논의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다. 또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는 점을 참작할 때 정년 연장 문제 역시 마냥 피해갈 수는 없다. 결국 정년 연장은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둔 법적 변화가 따라줘야 하는 일이다.
김선수 대법관은 공개변론 당시 “고령화가 되고 고령화가 된 노인들이 일자리도 많아지고 그 생계를 유지하려면 당연히 법률에 규범적으로 뒤따라야 하고, 그래서 정년도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사회 전체적인 발전 방향성에 맞는 것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개진했다.
현재 기초연금법 수급 연령과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의한 수급자 기준은 65세이며, 노인복지법상 경로우대 및 건강검진 등 각종 혜택이 제공되는 나이도 노인의 경우 65세로 규정돼 있는 게 현실이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