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도 자격 갖춘 한국에 유엔시티 조성해야”[차 한잔 나누며]

‘아시아 첫 유치’ 앞장선 임채원 경희대 교수/평화 위한 열망·분쟁 아픔 간직/“서울 용산이 최적의 장소” 밝혀/
동아시아 평화·사이버테러 예방/ 국내에 어울리는 특정 테마 제시/“21세기형 일자리 창출 가능해져/ 정부·민간 함께 힘 모아야” 강조
“평화가 다른 나라에는 절박하지 않은 문제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패권주의로 나가는 중국이 평화를 주장하겠어요, 전범국가인 일본이 하겠어요? 우리는 남북관계 평화에서 나아가 세계적인 평화 의제를 제시하는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유엔시티’를 유치해야 합니다.”

현재 세계에서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UNEP) 등 유엔 산하 각종 기구를 한곳에 유치한 나라는 덴마크(코펜하겐), 스위스(제네바), 오스트리아(빈), 미국(뉴욕), 케냐(나이로비) 등에 불과하다. 아시아에는 한 곳도 없다. 유엔시티 중에는 특정 주제를 정한 뒤 관련 의제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며 ‘제네바=인권’과 같은 이미지를 형성한 곳도 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만난 임채원(53) 경희대 교수는 “제가 봤을 때 차기 유엔시티로 유력한 곳은 아시아”라며 “서울 용산이 최적의 장소”라고 강조했다.

용산은 평화를 위한 선조들의 열망과 한반도 분쟁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100년 전 3·1운동 당시 수많은 노동자·학생이 이곳에 모여 평화 시위를 전개했고, 해방 이후에는 약 70년간 미군 부대가 주둔했다. 21세기 들어서는 개발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2009년 ‘용산 참사’도 일어났다.

임 교수는 “현재 용산에 가득한 건 개발 욕망”이라며 “글로벌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공무원, 대기업 입사를 꿈꾸는 지금 세대와 달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인권, 민주, 평화, 생태 등을 꿈꿀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어울리는 유엔시티 테마로 ‘동아시아 평화’, ‘사이버테러 예방’, ‘블록체인’ 등을 제시했다. 한국은 빠르게 민주주의를 달성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동아시아 국가들에 전달하거나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 사이버 폭력 관련 의제를 제시하는 데 강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유엔시티 유치를 통해 한국인의 시야를 세계로 돌리고 21세기형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고 임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 유엔시티가 유치되면 대학에 관련 학과가 생기고 국제기구에 취업하는 학생도 늘어날 것”이라며 “유엔 사무국이 있는 뉴욕은 관련된 직접 일자리가 2만명에 달하고 스위스 제네바의 경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스포츠 기구를 유치하며 파생효과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 일자리는 점점 더 기계가 대체할 테지만 이런 분야는 우리가 이슈를 선점하면 고용도 늘어난다”며 “환경, 글로벌 기업 문제 등 전 세계적인 문제를 다룰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에 특정 주제와 관련한 유엔시티 조성은 한국이 국력은 작아도 담론으로 앞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은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연합(EU) 차원에서 구글세 등을 논의하지만 그 외 지역은 각개전투 중이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만난 임채원 경희대 교수는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지만 세계사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며 “서울 용산에 유엔시티를 유치해 남북 평화에서 나아가 세계적인 평화 의제를 제시하자”고 제안했다.
임 교수가 세계평화에 관심을 가진 건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에서 현지 분위기를 경험하면서였다.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은 두 지역과 동떨어진 제3자가 중재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고, 이때의 문제의식이 2009년 볼리비아에서 2년간 빈곤과 불평등을 목격하며 점차 확대됐다고 한다.

그는 문재인정부의 정책기조인 ‘혁신적 포용국가’의 기틀을 만든 일원으로서 현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정부의 남북관계 정책을 지지하지만 평화의 초점이 남북 관계에만 맞춰져 있는 점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임 교수는 “올해 3·1운동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정부에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지만 세계사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며 “한국은 평화를 주도할 만한 자격이 있고 (한·일 관계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평화 담론을 주도하며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유엔시티 조성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