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와 학부모를 볼모로 한 사립유치원 집단행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립유치원단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지난달 28일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철회 등을 요구하며 이달 초 개학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유치원 3법은 '에듀파인' 도입과 회계비리 시 형사처분 등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한유총은 유치원 폐원 시 학부모 2/3 이상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도 반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유총은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사립유치원 감사결과가 공개되며 사립유치원 사태가 불거진 이후 유치원 공공성과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정부와 끊임없이 충돌해왔습니다.
특히 중요한 시기마다 집단행동에 나서며 세를 과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앞서 한유총은 작년 11월 광화문광장에서 자체 추산 1만5000여명, 경찰추산 3000여명이 참가한 집회를 열었습니다.
지난달 25일에는 국회 앞에서 자체 추산 3만명, 경찰이 추산한 인원도 1만명이 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 정부를 압박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기도 했는데요.
◆한유총 중요 시기마다 집단행동…세 과시하는 듯한 모습 보여 논란
한유총이 집회인원을 늘리기 위해 교사를 동원한 게 아니냐는 의혹 어린 시선도 있습니다.
최근 '영유아 교사에 관하여'라는 이름의 유치원 교사들이 많이 이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지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301명 중 62.1%가 "지난달 25일 한유총 집회에 강제로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해당 페이지에는 "집회에 안 가면 월급을 일할로 계산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거나 "교사가 불참하면 원장이 1인당 20만원씩 벌금을 내야 했다"는 등 집회참가를 사실상 강요했다는 제보가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유총이 집단행동으로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한유총은 2017년 정부가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40%까지 높이는 계획을 담은 '제2차 유아교육발전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려고 하자 공청회에 단체로 몰려가 무산시키고, 집단휴업을 선언하며 정부를 위협했습니다.
당시 한유총은 추석 연휴 직전 1주일간 휴업하겠다고 나서 학부모들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는데요. 긴 연휴가 시작돼 휴가를 쓰기 어려웠던 맞벌이 부모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태 추이를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한유총 지도부가 정부와 합의해 집단휴업을 철회했다가 내부 강경파가 이를 번복하면서 소동이 일기도 했는데요. 당시 휴업번복을 주도했던 이들 중 1명이 현재 한유총을 이끄는 이덕선 이사장입니다.
휴업철회를 끌어냈던 중재자 중 1명이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이었던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요.
이후에도 한유총 소속 사립유치원들은 온라인 유치원 입학관리시스템 '처음학교로'에 참여하지 않는 등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 태도를 유지해왔습니다.
교육계에서는 재산을 유치원 설립에 투입한 설립자가 유치원 운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정당한 보상을 가져갈 수 있도록 사유재산을 인정해달라는 한유총 주장이 완전히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다만 유아와 학부모를 볼모로 자신들의 주장을 사실상 강요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비리유치원 명단과 회계부정사례가 드러났을 때 가장 문제점으로 지목된 유형이 교비 횡령과 유용입니다.
정부로부터 약 2조원에 달하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비와 학부모부담금을 한 주머니로 관리해오면서 이른바 '쌈짓돈'처럼 쓴 것이 드러나 사회적 공분을 사기도 했는데요. 논란이 확산하자 정부는 지난해 10월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방안을 발표했으며, 이 가운데 핵심이 바로 에듀파인 도입입니다.
에듀파인을 도입할 경우 더 이상 원장이나 설립자의 쌈짓돈 조성이 불가능해지는데요. 국가 지원비와 학부모 부담금이 따로 관리되기 때문입니다. 교재비 등 지출이 필요한 경우 예산 편성 후 지출 품의·결의를 통해 집행해야하기 때문에 교비 유용도 사실상 어려워집니다.
◆"아이들 볼모로 자기네들 잇속만 챙긴다" 학부모들 비판 쏟아져
한유총이 유치원 개학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선언하자 "유아를 볼모로 자기들 잇속만 챙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상당합니다.
학부모단체는 한유총을 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는데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5일 서울 용산구 한유총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한유총을 공정거래법과 유아교육법,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국회의원을 지낸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아이들은 다니던 유치원이 갑자기 없어져 (유치원을) 옮기게 되면 큰 충격을 받는다"면서 "학생감소로 어쩔 수 없이 문 닫는 것이 아닌 기습적인 휴·폐원은 아동학대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는 유치원교사들도 큰 문제"라고 덧붙였는데요.
한유총 개학연기 소식에 맞벌이 부모들은 "당장 아이들을 어디에 맡겨야 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사실상 맞벌이가 필수인데, 유치원 문을 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유치원의 이기주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는데요.
한 학부모는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협상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우리 부부는 비교적 퇴근 시간이 일정해 사정이 조금은 나은데도 맞벌이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소식까지 전해지니 화가 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는데요. 이번 기회에 적폐를 청산해 앞으로는 더이상 학부모들이 이런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치원단체가 이같은 배수진을 쓸 수밖에 없도록 코너로 몰아세운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의견도 더러 있었습니다.
◆시민단체 "유치원은 교육기관이지 사설학원 아냐"
한유총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반교육적 행동을 멈추라"는 시민단체의 성명도 나왔습니다.
교사시민단체 '좋은교사운동'은 지난달 28일 성명을 내고 "아이들의 첫 학교로서 유치원이 입학보류, 휴원, 폐원 운운하며 아이들을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교육적 행태로 비판받을 것"이라며 "한유총에 집단 입학연기를 즉시 멈추고,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과 유치원 3법 개정안을 즉시 수용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은 "한유총이 사유재산 침해 운운하며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거부하고 집단적으로 입학 연기를 선언한 것은 교육기관임을 포기하는 언행"이라고 일갈하며 한유총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는데요.
한유총이 폐원을 하기 위해서 학부모 2/3의 동의를 받도록 한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유치원은 교육기본법과 유아교육법 적용을 받는 명백한 교육기관이지 사설학원이 아니다"라며 "관련 조항을 두고 사유재산 침해를 운운하는 것은 교육자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힐난했습니다.
사립유치원 시설 이용료를 인정하라고 요구한 데 대해서는 "사립유치원 시설은 본인들이 유치원 개원을 위해 필요조건이었던 유치원 시설과 부지를 확보한 것이지 국가가 강제로 쓰게 한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공공적 목적을 감안하며 사업소득세를 면제받는 혜택을 누려왔던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그러면서 "병원이 병원 시설 사용료를 국가에게 내라는 것과 같은 주장으로 전혀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은 한유총에 "아이들과 부모들의 애타는 마음을 볼모로 한 집단 입학 연기를 즉기 멈추라"며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상정된 유치원3법과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수용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한유총에서 온건파가 독립해 설립한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한사협)도 이날 성명을 내고 "한유총이 에듀파인을 도입하고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교육부 "개학연기 유치원 164곳에 불과해"…한유총 "데이터 못 믿겠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개학을 연기하는 유치원이 한유총 주장과 달리 전국에 164곳뿐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1일 밝혔습니다.
유 부총리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교육재난시설공제회관에서 열린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 회의에서 이같이 말하며 "이 중 97곳은 자체 돌봄을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는데요.
한유총은 전날 개학연기를 선언하며 회원사 3100여곳 중 60% 정도가 참여할 것이라고 밝혀 2000여곳 안팎이 참여할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유 부총리는 "전화 연결 등이 되지 않아 아직 확인되지 않은 유치원은 30% 정도"라면서 "해당 유치원까지 정확히 확인해 교육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덧붙였는데요.
한유총은 개학 연기에 참여하는 유치원이 전국에서 164곳이라는 발표에 대해 "교육부의 데이터는 믿을 수 없다"며 "경기도의 한 지회만 해도 70여 곳이 참여한다"고 반박했습니다.
◆檢 "사립유치원 개학연기 위법"…엄정·신속 수사 의지 천명
검찰이 한유총 소속 일부 사립유치원 개학연기와 관련해 법 위반 소지가 크다며 엄정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1일 "한유총에서 발표한 소속 유치원의 무기한 개학 연기는 교육관계법령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며 "대검은 향후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검찰 관계자는 "당장 유치원 개원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개학을 연기하겠다는 것은 유아교육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교육당국의 고발이 들어오면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해 유아교육이 정상활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립유치원 개학연기는 유아교육법상 학교운영위원회 자문을 거쳐야 하는데, 이 절차를 위반하면 유아교육법 위반으로 형사처벌될 수 있습니다.
개학연기에 대한 교육당국의 시정명령을 어기는 행위도 유아교육법 위반에 해당하는데요.
한유총이 회원 유치원에 강제로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크다는 것이 검찰 측 의견입니다.
◆강경 대응, 한유총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여론 추이 따라 개학연기 투쟁 달라질 듯
앞서 정부는 한유총의 유치원 개학 무기 연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 방침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유 부총리는 지난달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어 "한유총의 유치원 입학식 무기 연기는 사실상 집단 휴업과 같다"며 "학부모와 학생을 볼모로 삼아 사적 이익만을 얻고자 하는 초유의 행동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입학일 연기는 학교운영위원회 자문을 거쳐야 한다. 이 같은 절차를 무시했다면 유아교육법상 불법"이라며 "한유총이 회원 유치원에 강제로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인 만큼, 실제 이런 행위가 발생하면 공정위가 즉각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요.
교육청은 실제 입학식을 연기하는 유치원에 시정명령과 행정처분을 내리고, 우선 감사를 할 계획이며 감사를 거부하는 유치원은 즉각 고발할 방침입니다.
교육당국은 이날부터 긴급돌봄체계를 발동해 임시 돌봄 수요 파악에 나서기로 했는데요.
수요를 파악한 뒤 개학연기 유치원 주변 국·공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지방자치단체의 보육·양육지원서비스 등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돌봄체계를 활용해 돌봄공백을 최소화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개학을 연기하는 유치원 명단을 교육부와 교육청 홈페이지에 명단을 공개하고, 신청한 학부모에게 돌봄 서비스를 안내하는 등 모든 행정력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유 부총리는 "한유총이 투명한 에듀파인을 이제라도 수용하기로 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지만,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는 입학식 무기 연기는 교육자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교육청은 이날 한유총에 개학연기 철회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하는 한편 불법적인 집단행동을 계속하면 법에 따라 설립허가를 취소하겠다고 경고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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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교육재난시설공제회관에서 열린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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