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이젠 3·1혁명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심층기획]

“민주혁명… 바른 이름 찾을 때”… 일각 與주도 정쟁화 우려

“지금까지 우리는 ‘3·1운동’이라고 불러왔는데, 학자들 중에는 ‘3·1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는 분들이 계신다. 저도 혁명이라고 명명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올해 1월22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3·1운동에 관한 제안이 있다. 3·1운동의 정명, 즉 바른 이름 붙이기에 관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논의가 나온 바 있다. 좀 더 깊은 논의가 전개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지난해 12월14일 이낙연 국무총리)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절 전후로 3·1운동의 명칭을 3·1혁명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무총리와 집권여당 대표를 필두로 정치권에서 연일 관련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학계와 종교계, 시민사회에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3·1혁명이라는 명칭 사용이 부적절한 것 아니냔 반박도 나온다. <세계일보>는 각각의 주장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등을 정리해 봤다.

적십자사 소책자에 실린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사진. 3.1운동 100주념기념사업추진위원회
◆“정명해야 하는 이유, 한두 가지 아냐”

3·1운동의 정명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김상웅 전 독립기념관장이다. 김 전 관장은 지난달 26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3·1혁명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는 한 둘이 아니다”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3·1혁명은 봉건군주제를 거부하고 민주공화제를 주창한 민주혁명이었다”며 “신분과 계층, 종교, 이념, 지역을 초월해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참여한 자주독립선언도 3·1혁명이라고 불러야 하는 한 이유”라고 말했다.

 

김 전 관장은 이어 “3·1혁명은 중국의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 무저항주의, 이집트의 배영운동 등 전 세계 민족 해방 운동의 봉화역할을 했다”며 “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다 함께 참여함으로써 국민 정체성 형성에 기여했고, 세계에 평화주의 사상을 전파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처럼 혁명에 못지 않은 거사였는데도 운동이라고 부르는 건 3·1혁명 정신의 선열들을 모독하는 일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천도교 학술대회에서 3·1혁명으로의 개칭을 역설한 윤경로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명예교수(전 한성대 총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임시정부에서도 3·1혁명으로 불렀고, 우리 제헌의회의 헌법 초안에도 3·1혁명으로 돼 있었다”며 “그랬던 것이 갑론을박 끝에 ‘(3·1운동이) 국가의 체제를 전복한 건 아니지 않냐’ 이런 얘기가 나와서 헌법에 혁명이 아닌 운동으로 표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이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함께 만든 100년, 함께 만드는 미래``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외 사례 다수… 개칭할 때 됐다”

김 전 관장은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는 정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우리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동학난이라고 부르던 것을 나중에 동학혁명으로 바꿔불렀고, 4·19의거는 4·19혁명으로,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명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프랑스혁명이 프랑스대혁명으로 격이 높아진 것도 정명의 한 예라고 한다. 김 전 관장은 이어 “이젠 정명을 할 시점”이라고 부연했다.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역시 “3·1혁명은 운동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미약하다”며 “역사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제는 3·1혁명이라는 올바른 이름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힘 주어 말했다. 역사학계에서도 3·1운동의 개칭 논의가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번 100주년을 계기로 학계에서 3·1운동 정명이 더 폭넓게 조명되고,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에는 국민 절반 가까이가 3·1혁명으로의 개칭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실시해 지난달 20일 발표한 대국민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49.4%는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꾸는데 찬성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반대 입장도 38.8%로 찬성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모름·무응답은 11.8%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3.1절 100주년을 맞은 1일 오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관람을 하고 있다.
◆헌법 등 제도 정비·사회적 합의는 과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듯, 3·1혁명으로의 개칭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제헌의회 때도 나온 얘기지만 혁명이라는 건 국내에서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반란이나 봉기로 체제를 뒤집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정명 주장은 기본적인 어법에도 맞지 않으며, 억지로 3·1운동을 드높이기 위한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전시관에 3.1 독립선언서가 적혀 있다. 뉴시스
3·1운동의 정명이 정치권, 특히 주로 여권 인사들에 의해 언급되면서 정쟁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정명 주장을 겨냥해 “3·1운동을 진영논리에 끌어들이지 말라”며 반발하고 있다. 위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자유한국당 등 야당 지지층과 60대 이상에서 개칭 반대 여론이 절반을 넘었다. 이와 관련해 윤 명예교수는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 관여하지 말고 학계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관련 법·제도의 정비 등이 정명의 과제로 꼽힌다. 임 교수는 “정명을 하려면 우선 3·1운동이란 단어를 담고 있는 헌법 전문을 고쳐야 하고, 교과서 등의 대대적인 수정 작업이 필요하다”며 “또 공청회 같은 걸 열어서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거친다면 합의를 일궈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명이 되면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고취되는 등 효과가 엄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영 기자, 이강진 수습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