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베트남 공식친선방문을 위한 4박 5일간의 베트남 체류를 마치고 평양으로 되돌아간 가운데, 그는 베트남에 대략 100시간 머물렀는데요.
집권 후 최장기 외유에 나서며 정권의 명운을 건 '승부수'를 던졌지만,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합의 채택에 실패하면서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마지막 일정으로 '베트남의 국부'이자 할아버지 김일성과 긴밀한 유대를 지녔던 호찌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 묘소를 찾아 헌화했는데요. 하노이에서 다시 차를 타고 낮 12시30분쯤 동당역에 도착, 대기하던 전용열차에 올랐습니다.
전용열차 안으로 들어가기 전, 김 위원장은 뒤를 돌아 환송 나온 베트남 주민들에게 마지막으로 힘차게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는데요.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 속에서 김 위원장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김정은, 정권의 명운 건 승부수 던졌지만…
결국 합의문 없이 끝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20시간20분의 비행 끝에 하노이에 온 트럼프 대통령과 열차로 66시간을 달려 베트남에 입성한 김 위원장 모두에게 시간과 에너지 소모 측면에서 상당한 '데미지'를 안겼다는 분석입니다.
일각의 관심은 '빈손 담판'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누가 더 입었는지에 쏠리고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우선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김 위원장과의 불확실한 '톱다운(top-down)' 외교를 재가동했다가 빈손으로 귀국하게 된 것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가 연루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러시아 스캔들' 관련 특검보고서 의회 제출이 임박한 상황에서 정치적 돌파구 마련을 위해 외교 측면에서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도 나왔는데요.
이처럼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노딜'(No deal·합의 없음) 귀국을 한 것은 미국 내 트럼프 비판 세력에 일종의 공격 거리를 제공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김 위원장도 미국으로부터 제재 해제를 받아냄으로써 경제 건설에 발판을 만들 것이라는 자국 엘리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타격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회담을 위한 하노이로의 출발 사실을 북한 매체들이 보도하고, 첫날 회담 후 노동신문 등이 지난달 28일자 북미 정상의 대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기대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북미정상회담의 맥락과 이번 회담에서 북측 목표를 아는 이들에게는 김 위원장의 '노딜 귀국'이 실망을 안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양 정상이 받은 타격이 대중들의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양측 내부를 만족시킬 수 없는 '스몰딜'에 합의한 것보다는 나은 '차악'을 택했다는 평가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결렬에 대해 미국 내 비판 여론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제재 해제에 합의했더라면 미 의회에서 크게 반발하는 등 후폭풍이 더 컸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미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만큼, 이번에 합의하지 않은 데 대해 공화당 지지층은 되레 '잘한 일'로 평가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트럼프, 대북 제재 해제 합의했더라면? "美 의회 후폭풍 더 컸을 듯"
그렇다면 이번 합의 결렬에 대해 외신들은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합의 결렬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의 오판에 따른 것이라고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분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운 일괄타결(그랜드바겐)을 요구했고, 김정은 위원장 역시 '영변 핵시설 카드'로 핵심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끌어낼 수 있다고 잘못 계산했다는 것입니다.
NYT는 정상회담에 관여한 당국자 6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이같이 평가했는데요.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사항은 역대 미국 행정부에서 북한의 반대에 부닥쳤던 내용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시설을 포기하면 대북제재를 전면 해제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이끄는 내용입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마이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 참모진은 일괄타결 방식의 비핵화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로 봤지만, 자신을 능숙한 협상가로 자평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김 위원장 역시 오판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핵심적인 제재조항들을 해제하자는 요구는 미국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NYT는 "워싱턴의 '마이클 코언 청문회'를 뒤덮을 신문 헤드라인이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했는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면서 "다만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만으로 합의하면 곳곳에 핵 프로그램을 숨겨둔 젊은 지도자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으로 비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실무협상부터 북미 간의 뚜렷한 시각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실무협상에서 노후화된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는 제재 완화가 어렵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고, 정작 북한 협상팀은 '오직 김 위원장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영변 핵시설 내부의 어떤 시설을 해체할지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었다고 NYT는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고, 김 위원장이 전용 열차에 올라 베트남으로 향한 시점까지도 실무협상은 교착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영변 카드'를 내세워 5건의 대북제재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타결로 맞섰다는 것입니다.
NYT는 "결국 과도한 자아(ego)가 나쁜 베팅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의 당국자는 CNN방송에 "김 위원장은 '백업 플랜'이 없었다"면서 "선언문에 서명할 것으로 매우 자신있게 기대하면서 하노이에 도착했다"고 전했는데요.
북한 대표단도 합의 기대감 속에 정상회담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당국자는 CNN에 "북한은 영변의 모든 것을 내놓으려 했다. 공식적인 문서의 형태로 완전히 해체하려고 했다"면서 "북한은 아주 진지하게 협상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대표단이 그 제안을 거절하고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영변의 모든 것 내려놓으려 했던 北, 정말 '플랜B' 없었나?
트럼프 대통령의 김 위원장의 제재 완화 요구에 대한 '과장된' 해석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AP통신은 2일(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둘러싼 양국의 진실 게임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번에는 북한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하노이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북한은 완전한 제재 해제를 원했으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며 "회담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는데요.
그러나 몇 시간 뒤 리용호 외무상은 북한이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해제가 아닌 일부 해제였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북측은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대신,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제재 항목의 해제를 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측 고위 관계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2016년 3월 이후 유엔 안보리가 부과한 제재의 해제를 요구했다"며 10년 또는 이 이상이 지난 모든 제재의 해제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북측은 민간 경제와 민생과 관련된 부분의 제재 해제를 집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AP통신은 "북한이 금속·광물·사치품·수산물·석탄수출·정제유수입·원유수입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제재를 받고 있다"면서 "이 상황에서도 북측이 '민생'에 주목한 것은 주요한 협상 포인트로 봐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군수 관련 제재 해제를 요구하지 않았다"며 "북한은 핵무기를 자기방어의 수단이라고 주장하지만, 당분간은 핵미사일과 직접 관련 있는 제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습니다.
다시 말해 북측이 제재 해제와 관련해 강력한 요청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것과 같이 모든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요.
북한 매체들은 북미정상회담 결렬과 관련해 "상호 존중과 신뢰를 강화시키고,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진전되는 새로운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고 보도해 묘안 여운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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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달 28일, 자신의 SNS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좌측)이 제2차 북미회담을 끝내고 밝게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
청와대는 이번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말을 아끼는 듯한 모습입니다.
북한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쇄와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 맞교환이 균형이 맞지 않는 합의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3일 "평가를 내릴 수도 없고, 내려서도 안 되는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는데요.
김 대변인은 "정부는 이번에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다시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중재자로서 책임감 있게 해야하는 입장으로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비핵화 및 상응조치 이견으로 '하노이 선언'이 무산, 개최국인 베트남도 '평화의 도시'라는 슬로건이 다소 무색해지는 결과를 맞았으나 베트남이 손실만 본 건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BBC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지난달 27일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베트남 무역투자협정에 관한 의견을 나눴는데요. 이는 양국이 베트남전이라는 과거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협력에 나선다는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는 분석입니다.
베트남은 이번 회담을 통해 '정상국가급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목표도 일정 부분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회담 기간동안 베트남의 미국, 북한 대표단에 대한 의전과 전 세계 언론인들에 대한 지원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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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스즈키컵`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Zing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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