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9-03-04 19:25:24
기사수정 2019-03-04 23:31:33
5일부터 집단행동 철회키로 / 등원 30분 전에 정상운영 등 통보 / 보육대란 없었지만 학부모들 불만 /“유치원 이기심에 아이들만 피해”/ 통학버스 운행 않고 프로그램 부족 / 돌봄서비스 이용 학부모들도 원성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개학 연기’ 투쟁을 시작한 당일인 4일에 돌연 철회한 것은 “아이들을 볼모로 삼은 집단행동”이라는 비판여론을 견디지 못해서다. 더욱이 서울시교육청이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하기로 하는 등 정부의 초강수 압박에 고립무원 신세로 몰린 한유총의 정치적 상황도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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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개학연기 미정으로 분류됐던 고양시의 한 유치원 앞에서 어린이가 엄마 손을 잡고 등원하고 있다. |
◆한유총 이사장마저 지침 어긴 졸속 투쟁
한유총은 지난 3일 “1500여곳의 참여”를 공언했지만 실상은 천양지차였다. 유치원 대다수가 참여하지 않거나 자체 돌봄을 제공하는 등 지도부 방침을 따르지 않았다. 한유총이 내심 자신하던 ‘단일대오’가 여론과 정부의 압박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자체돌봄 교실까지 닫은 사립유치원은 전국적으로 18곳에 불과했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심지어 투쟁의 선봉에 선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이 소유한 유치원조차 자체 돌봄서비스를 제공했을 정도로 졸속 투쟁이었다. 이 이사장이 조만간 자리에서 물러날 뜻을 비친 것도 이런 책임론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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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연기한 인천시 남동구 한 사립유치원에서 학부모들이 아동과 함께 등원하고 있다. 이 사립유치원은 이날 개학은 연기했지만 돌봄서비스는 운영하기로 했다. |
개학 연기 투쟁이 실패할 것이란 전망은 진작부터 흘러나왔다. 교육부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지도부의 회유·협박에 윗선에는 참여한다고 보고했지만 실제 개학 연기는 하지 않겠다는 유치원이 상당수였다”고 전했다. 한유총이 개학 연기를 철회하고 각 유치원에 자체 판단에 따라 개학을 결정해달라고 밝히면서 5일부터는 유치원 운영이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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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개학 연기 투쟁`에 나선 4일 오후 등원하지 못한 어린이들이 경기도 수원시의 한 공립유치원에 마련된 임시돌봄교실을 이용하고 있다. |
◆아킬레스건 건드린 서울교육청
한유총이 투쟁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린 것은 서울시교육청의 ‘설립허가 취소’ 예고가 주요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날 오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5일 한유총 설립허가 취소 관련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을 밝힌 지 세 시간도 채 안 돼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조건 없는 철회’ 내용을 담은 보도문을 발표했다.
교육 당국에 따르면 한유총이 설립허가 취소 통보를 받으면 임의단체가 된다. 사실상 ‘공중분해’ 되는 것이다. 한유총에 소명할 기회를 주는 청문 절차가 남았지만 교육청 내부에서는 “충분한 법리 검토를 갖췄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한유총의 ‘급선회’도 이같은 상황을 고려, 향후 교육청과 진행할 법적 다툼에서 정상참작이라도 받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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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유치원 3법` 철회 등을 요구하며 결국 개학 연기 투쟁을 강행한 가운데 4일 오전 경기 화성 리더스 유치원이 개학연기를 하고 있다. 경기 화성에서 무기한 입학연기를 강행하는 사립유치원은 한국사립유치원총연합회 이덕선 이사장이 운영하는 동탄 리더스유치원 단 1곳으로 확인됐다. 화성=이재문기자 |
◆보육대란 없었지만 학부모 ‘분통대란’
이날 일부 사립유치원의 개학연기 강행으로 주말 내내 마음을 졸인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인터넷 학부모 카페 등에서는 “개학 연기 철회와 상관없이 하루라도 개학 연기를 한 유치원을 제재해야 한다”며 엄정한 대응을 정부에 촉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날 오전 취재팀이 서울시내 유치원들을 돌며 확인한 결과 서울시교육청 누리집의 개학연기 유치원 명단에 올라 있던 상당수 유치원이 정상적으로 개학했다. 특별한 혼선은 빚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학부모들의 불만은 가시지 않았다. 유치원 앞에서 만난 학부모 김모(33·여)씨는 “사흘 전에 갑자기 개학을 연기한다고 해서 짜증이 났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학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생길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김모(45)씨는 “한유총이 무슨 권력이라고 아이들을 볼모로 삼는 건지 모르겠다”며 “‘에듀파인’ 도입에 반대해서라고 알고 있는데 유치원들의 이기심에 학부모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체돌봄서비스를 이용한 유치원 학부모들도 불만은 마찬가지였다. 서울 동대문구의 F유치원 학부모 임모(38·여)씨는 “일단은 아이를 맡길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개학이 계속 늦춰지면 어디에 맡겨야 할지 모르겠다”며 “일하는 학부모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휴가를 쓰거나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겨야 한다”고 털어놨다.
이날 부산에서 개학을 연기한 사립유치원 대부분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했지만 통학버스는 운행하지 않았다. 부산 학부모 E씨는 “통학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1.5㎞가량 되는 거리를 걸어서 등원시켰다”고 말했다.
◆재발방지 위해선 근본 대책 세워야
한유총의 개학연기 철회로 이날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최근 교육당국과 한유총의 ‘줄다리기’를 살펴보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개학연기와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엔 정부의 ‘강경 일변도’가 통했다지만, 지난 2016∼2017년에 한유총이 집단휴업 카드로 정부를 압박했을 땐 아이들과 학부모의 불편을 고려한 정부가 한유총의 재정지원 확대 등의 요구를 들어준 바 있다.
전문가들은 국공립유치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재발방지책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25.4%로, 나머지 74.6%가 사립유치원에 유아교육을 의존하고 있다. 임재택 유아교육보육혁신연대 상임공동대표는 통화에서 “근본적으로 모든 학부모들이 무상교육을 받는 시스템으로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