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류한류] 핏자국 따라… 데이트폭력 남성 제때 잡았다

“남성이 여성을 주먹으로 때리고 있어요”

4일 오전 6시30분 서울 강남경찰서 논현1파출소에 긴급한 신고전화가 울렸다. 골목길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 경찰은 곧장 범행 장소로 지목된 논현초등학교 인근으로 출동했지만 현장에선 피의자도 신고자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갈래로 나눠진 골목을 찾길 10여분. 약 200m 떨어진 근처 주차장 입구에서 한 경찰관이 외쳤다. “여기 운동복 상의와 휴대폰, 주민등록증이 있습니다!”

이곳엔 피해자 소지품 외에 혈흔도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은 주변 바닥을 찾다 곧 또 다른 혈흔을 발견했다. 경찰은 골목길을 샅샅이 뒤졌다. 당장 피의자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기 때문이다. 핏자국을 하나씩 하나씩 따라간 경찰은 200여m 떨어진 한 빌라 앞에 멈춰 섰다. <세계일보 3월5일자 10면 참조>

경찰은 정황상 101호에 피해자가 있을 것을 직감하고 문을 두드렸다. 어떤 인기척도 없자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경찰은 빌라 내에 있는 모든 집을 수소문해 건물 관리자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경찰은 곧 입수한 주민등록증을 토대로 건물관리인과 통화했다. 피해자가 101호 거주자라는 것을 특정한 순간이었다.

파출소 대원들은 101호 앞에서 강제개문을 경고했다. 이후 ‘후다닥’ 소리가 나더니 문이 덜컥 열렸다. 남자친구가 당황한 사이 피해자가 뛰어와 문을 개방한 것이다. 경찰이 본 피해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속옷만 입은 채 얼굴은 피범벅이 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부엌칼을 들고 “죽이겠다”며 살해 위협까지 했다. 극단적 상황이 펼쳐지기 전 다행히 경찰이 범행현장을 찾은 셈이다.

강남경찰서는 이날 여자친구인 윤모(19)씨를 주먹으로 가격하고 살해 위협을 한 김모(25)씨를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6일 밝혔다. 병원으로 이송된 윤씨는 10바늘 이상 상처 부위를 꿰맨 것은 물론 눈 주위 뼈와 코뼈가 모두 골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는 “김씨가 만취해 아무런 이유없이 갑자기 자신을 때렸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가 윤씨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거나 주먹으로 폭행을 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