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9-03-08 23:55:00
기사수정 2019-03-08 19:47:43
“올해로 언니의 사망 10주기가 되었다. 잔혹동화 같은 이 이야기가 지나간 내 삶이다. 자연 언니와 함께했던 시간은 기껏해야 1년 남짓, 하지만 나는 그보다 10배가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언니를 잊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라고 들었다. 지금도 나는 언니의 죽음을 견뎌내고 있다. 나를 ‘애기야’ 하며 다정하게 부르던 그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언니의 내민 손을 미처 깨닫지 못해 못 본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과 회한으로 나는 13번의 증언을 했다. 그것이 살아남은 내가 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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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의 증언 - 2009년 3월 7일, 그 후 10년 윤지오 지음/가연/1만3800원 |
“내가 알던 자연 언니는 맑고 여린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가 남몰래 받았던 상처, 쓸쓸히 자신의 손으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그 고통까지는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사건이 일어난 후 한국을 떠나오고부터는 정작 단 한 번도 언니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그동안의 침묵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그리고 이제는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목격자인 윤지오가 밝히는 10년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성접대 의혹 사건 속 세상을 떠난 배우 장자연의 동료배우 윤지오 씨가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면서 이 책을 냈다. 윤씨는 한 방송에 출연해 고인 유서에서 동일 성씨를 지닌 언론인 3명의 이름을 봤다고 했다.
윤씨는 이 책을 통해 경찰과 검찰에 불려나가 유서 내용을 진술한 이후, 연예계에서 퇴출됐다고 밝혔다. “나는 (조사)이후 연예계에서 퇴출 아닌 퇴출을 당했고 힘든 세월을 겪어내며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숨어 살듯 숨죽여 지내야 했다. 나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되었고, 계속되는 트라우마로 힘겹게 살아왔다. (중략) 나는 억울했다. 하지만 언니의 죽음 뒤에 서 있던 그들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증언대에 올랐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윤씨는 “그 당시 21살이었던 제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부실하게 진행되었다”며 “조사도 늘 늦은 시간(빨라야 밤 10시)에 시작되었으며 수사관들은 다 남자였다. 그들은 내가 진술할 때 비웃기까지 했다”고 했다. 윤씨는 “피해자가 오히려 책임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사는 그런 현실이 한탄스러워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며 “(장자연)문건이 왜 작성됐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책 출간과 동시에 실명과 얼굴이 알려져 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겠다고 저자는 두려워했다. 장자연 성접대 의혹 사건은 2009년 경찰이 수사했지만 부실 수사 의혹이 불거져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 중이다.
정승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