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진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어제 광주 법정에 섰다. 그가 피고인석에 선 건 1996년 내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지 23년 만이다. 전직 대통령이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출석한 것은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다. 전씨 측은 이날 재판에서도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실망스러운 일이다.
전씨 측은 법정에서 “과거 국가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재판의 쟁점은 헬기 사격이 허위 사실인지, 회고록을 쓸 때 이 내용이 허위라는 인식과 고의성이 있었는지다. 헬기 사격은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조사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광주 전일빌딩 외벽에서 탄흔이 다수 발견됐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헬기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감정했다. 검찰은 헬기에서 시민을 향해 총격이 이뤄졌다고 기록된 미국대사관 비밀전문을 확인했다. 이 같은 객관적 사실을 무시하는 것은 전씨의 오만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