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틱낫한 스님은 원통과 유리조각으로 만든 만화경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통을 굴리면 여러 가지로 놀라운 모양과 색깔들이 나타나고,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여도 한 형상이 나타났다가 다른 형상에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신기했다. 스님은 어린 시절의 그 추억을 재료로 태어남과 죽음을 서술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얼굴에 미소를 띠며 평화롭게 죽어가는 이들을 나는 보았다.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이 바다 자체가 아니라, 만화경 속의 아름다운 형상들 같은, 바다 표면의 물결인 것을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 오직 끝없는 연속이 있을 뿐.”
에세이집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에 실린 이 글은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하나의 사례다. 책은 스님이 세계 곳곳을 다니며 설파하고, 100여 권의 책을 통해 전한 가르침이 비롯되는 일화들로 가득하다. ‘틱낫한(사진)’이란 이름의 무게 때문에 평범한 이들은 겪기 힘든 특별한 경험, 상황 등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소소한 일들에서 깊은 통찰을 얻어낸다. 그것은 열린 마음, 견해에 집착하지 않기, 자유로운 사고, 단순하고 건강한 삶, 진실하고 사랑이 가득한 말하기 등이다. 다른 책들이 그랬듯 여기서도 스님의 간결하면서 편한 글쓰기에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스님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를 강조한다. ‘설거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런 태도가 잘 드러난다. 그는 “접시와 물과 내 손의 움직임에 온전히 깨어 있으면서 접시 하나하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고 말하며 “내 삶의 일분일초가 하나의 기적이다. 접시들이 거기 있고 내가 그것들을 닦는다는 사실, 이게 바로 기적”이라고 썼다. 그것은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방식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에 전쟁이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 와중에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스님과 동료들이 복구를 도운 마을이 세 번이나 폭격을 받아 무너졌을 때 매번 복구하며 스님은 포기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절망에 무릎꿇기가 쉬울 때였다.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현재 상황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행동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스님은 베트남전쟁 당시 평화운동을 벌이며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추천되었으나 정작 고국 베트남은 그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40년 가까이 망명객으로 살다 지난해 12월 고향으로 돌아와 16살에 출가했던 투 히에우 사찰에 머물며 가르침을 펼치고 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