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김학의 동영상’은 강간 혐의가 아닌 거짓말 증거”

"피해 여성 ·윤중천·김학의 각각 상반된 진술… 동영상이 거짓말 결정적 증거" / "검찰이 동영상은 특수강간 혐의 증거가 안 된다고 논점 흐려" / "검찰의 부실 수사 및 제식구 봐주기 의혹에 대한 규명이 진상조사의 본질"

“검찰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연루된 별장 성접대 의혹) 동영상으로는 (김 전 차관이 받았던) 특수강간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경찰)는 애초 해당 동영상을 특수강간의 증거라고 한 적이 없다. 검찰에 제출한 수사기록에도 그렇게 돼 있다. 동영상만 보면 남녀가 노래하고 춤추다 성관계를 하는 거라 성폭행 장면 같지도 않다. 다만 피해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랬고 별장 성관계 전후에도 강요된 성관계를 당해왔다’고 진술한 반면 (별장 성접대 의혹 장본인인 건설업자) 윤중천과 김 전 차관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별장에 부르거나 간 적 없다. 별장에서 여성들과 성관계를 한 적이 없다’며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상반된 진술을 하는 상황에서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 동영상은 여성들과 김 전 차관, 윤씨 중 누구의 진술을 신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따라서 검찰은 김 전 차관과 윤씨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등 관련 혐의를 철저히 수사했어야 한다. 검찰이 자꾸 동영상은 특수강간 혐의의 증거가 안 된다는 식으로 논점을 흐리면 안 된다.”   

 

 검찰이 과거 2차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려 ‘제식구 봐주기 수사’ 의혹이 일었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과 특수강간 혐의 사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하고, 재조사를 진행 중인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활동도 2달 연장된 가운데 해당 사건을 수사해 김 전 차관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던 경찰 수사팀의 관계자는 19일 통화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과거사위 진상조사단은 검찰의 부실 수사 및 제식구 봐주기 의혹에 대한 규명이 진상조사의 본질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최근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검찰 쪽 입장을 보면, ‘문제의 동영상이 경찰이 송치한 김 전 차관의 범죄 혐의(특수강간 등)와는 관련이 없다’는데.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김 전 차관이 맞는지와 별개로 촬영 시점과 경찰이 김 전 차관에게 적용한 특수강간 혐의 발생 시점이 다르고 동영상에 강간으로 추정되는 장면도 담겨있지 않아 혐의 입증에 대한 증거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 아닌가.(참고로, 민갑룡 경찰청장은 얼마 전 국회에서 동영상 속 인물은 김 전 차관이 맞다고 밝혔다.)

 

“우리(경찰 수사팀)는 애당초 검찰에 동영상과 사건기록을 송치하면서 특수강간의 증거라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사 당시 윤씨와 김 전 차관이 ‘서로 모르는 사이다. 별장에 초대한 적도, 간 적도 없다. 당연히 별장에서 여자들하고 성관계를 한 적도 없다’고 한 반면 여자들은 반대의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별장에서도 그렇고 그 전후로도 몇차례 강요된 성관계를 가졌다며 피해자라고 호소했다. 이처럼 아무 증거가 없고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성관련 사건에선 누구 말이 더 믿을 만 한지 가려져야 강간인지, 합의된 성관계인지 판단할 수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처럼 말이다. 그런데 김 전 차관과 윤씨의 반박과 달리 김 전 차관이 버젓이 윤씨 별장에서 여자들과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이 나온 것이다. 두 사람의 진술이 거짓말임을 알려준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피해 여성들은 별장 사건 이후에도 ‘두 사람한테 성폭행을 당했다’ 하고, 또 다른 여성은 ‘윤씨의 강요로 김 전 차관과 성관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구체적으로 피해 사실을 진술했는데 이들 진술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증거가 동영상이었던 것이다.”

 

-수사 당시 김 전 차관으로 특정할 수 있는 동영상을 입수해 김 전 차관과 윤씨에게 보여줬을 때 두 사람의 반응은 어땠나.

 

“동영상을 보여줘도 두 사람은 끝까지 ‘그런 적이 없다’며 우기거나 묵묵부답으로 답변을 회피했다.”( 앞서 경찰이 2013년 7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특수강간과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상습강요 등 혐의로 윤씨와 김 전 차관 등 관련자 18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을 때도 김 전 차관과 윤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김 전 차관은 변호인을 통해 “여성들의 일방적 진술에 불과하다. 성접대를 받지 않았고 문제가 된 여성과 그런 관계도 전혀 없었다. 윤씨도 이런 부분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경찰 발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윤씨와는 모르는 관계이고 성접대나 동영상 등과도 아무 관련이 없다는 종전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경찰이 사건 초기 불거졌던 성접대를 활용한 고위 공직자 뇌물 수수 혐의가 아니라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한 이유는 뭐였나.

 

 “당시 ‘고위공직자 성접대 의혹’은 경찰이 아니라 언론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우리는 의혹이 확산하니 진위규명에 나섰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성접대라면 여성의 (자발적) 의사가 동반돼야 한다. 그런데 여성들은 ‘윤씨한테 보복당할 것 같아 억지로 (별장에) 가서 성관계를 당했다’라고 했다. 뇌물죄의 경우도 수사를 하려면 줬다고 하는 사람이나 전달자가 있어야 하고, 하다못해 관련 장부라도 있어야 하지만 그런 단서가 없었다. 해당 여성들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대가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더욱이 뇌물죄 공소시효도 몇 달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여성들이 주장하는 피해사실 관계에 부합하고 입증해서 처벌이 가능한 특수강간 혐의(공소시효 15년)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이다. 이를 위해 피해 여성들이 2008년까지 당했다는 성폭행 사건을 정말 힘들게 수사했다.”(경찰은 당시 문제의 ‘별장 성관계 동영상’이 2006년 8∼9월쯤 촬영됐고 2007년과 2008년에 수차례 성폭행이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 전 차관 외에 연루된 고위공직자가 더 있었음에도 청와대 등의 외압을 받아 경찰이 수사를 축소하거나 관련 디지털 증거 송치를 누락하고 삭제·폐기했다는 의혹이 일부에서 제기되는데.

 

 “그 당시 윤씨 다이어리와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사람, 명함에 있는 사람, 별장에서 접대받은 멤버 등 윤씨와 친분있는 사람들은 싹 긁다시피해서 일일이 확인한 뒤 의혹 사건과 연루됐는지 여부를 가렸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차관 외의 고위공직자(출신)로 볼 만한 사람은 전·현직 검찰 고위직 인사 A, B, C씨, 군 고위직 인사 D씨 정도였다. 이들은 윤씨와 친분은 있어보이는데 성관계 등에 연루된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김 전 차관만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전직 경찰청장 연루설도 들려 확인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윤씨의 별장 등에서 압수했던 컴퓨터 등 디지털 증거물 중 윤씨의 자녀관련 기록처럼 사건과 무관한 것들은 압수품 처리 원칙과 절차에 따라 검찰 지휘 받아 처리했다. 수사팀에 직접적으로 들어온 외압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검찰과거사위 진상조사단이 맡고 있는 ‘김학의 사건’ 재조사의 쟁점은 뭐라고 보나.

 

“동영상을 통해 김 전 차관의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났는데도 검찰은 왜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고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했는지, 경찰에선 일관되게 피해 사실을 진술했던 여성들이 검찰에 가서 진술 내용을 바꾼 이유 등 석연치 않았던 검찰 수사 전반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본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