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포항지진이 촉발지진이라는 정부조사연구단의 발표는 ‘극적인 반전’으로 평가된다.
2017년 11월15일 포항지진 발생 며칠 뒤 이진한 고려대 교수(지구환경과학)가 지열발전소의 연관성을 언급했을 때만 해도 이는 소수의견에 지나지 않았다.
인위적인 요소로 포항지진이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교과서 지식’과 어긋나는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지열발전소에 물을 주입할 때 지진이 일어나는 건 흔한 일이다. 물이 땅 속 압력을 높이면 그에 반응해서 일어나는 게 지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열발전소로 인한 지진은 물 주입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다. 포항지진은 물 주입을 중단한 지 두 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일어났다.
규모 5.4의 지진을 일으킬 만큼 물 주입량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논란거리였다. 2011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는 지하에 폐수를 투입해 셰일가스를 뽑아올리는 과정에서 규모 5.6의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주입된 물의 양은 1200만t으로, 포항 지열발전소 주입량(1만여t)보다 1000배 이상 많았다.
또 규모 5 이상의 자연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는 규모 4의 지진이 10회, 규모 3의 지진이 100회가량 발생하는 게 일반적이다.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지진일 때는 규모 3∼4의 지진이 이보다도 더 많이 일어난다는 게 통념이었다.
포항은 원래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은 아니어서 계기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2015년까지 네 차례 지진이 발생했을 뿐이다. 2016년 말부터 규모 2 지진이 세 차례, 규모 3이 한 차례 일어나는 등 빈도가 늘긴 했지만, 총 횟수로 따지면 네 차례에 불과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포항 지진 발생 9일 뒤 열린 ‘포항지진 긴급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대체로 “지열발전소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닐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3월 정부조사연구단이 꾸려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연구단에 참여한 손문 부산대 교수(지질환경과학)는 “포항지진 같은 유형의 유발(촉발)지진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어 처음에는 대부분 반신반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스위스·독일·영국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팀과 국내 연구팀(이진한 교수, 김광희 부산대 교수)이 각각 지열발전소가 포항지진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나란히 ‘사이언스’에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기울기 시작했다.
손 교수는 “관련 근거 자료가 하나 둘 나올 때마다 모두들 놀랍다는 반응이었고, 지난해 말부터는 이견이 거의 없었다”며 “포항지진은 세계가 주목할 만큼 이례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연구단에 참여하지 않은 경재복 한국교원대 교수(지구과학교육)도 “지금까지 나온 증거를 보면 이번 연구단의 조사결과는 상당히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는 “포항지진만 떼어 놓고 보면 지열발전소가 주된 원인 같지만 경주지진 이후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면 이를 반박할 근거가 많다”며 “조만간 (포항지진은 자연지진이라는) 상당히 구체적인 이론적 근거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 교수는 이번 연구단에 참여하지 않았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