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 표현하려다 범법자…사각지대 놓인 '성범죄 발달장애인' [뉴스 인사이드]

“장애 특성 고려한 성교육 필요” / 특성상 신체 접촉 하려는 경향 많은데 / “성에만 집착” 편향된 시각 접근 많아 / 비장애인보다 재범률 3.5배나 높은데 수사기관선 대부분 정신병원 입원 권유 / “기존의 인지행동 치료로는 효과 부족…약물보다 근본적 교육으로 접근해야”
#1. 자폐성장애 2급인 A(25)씨는 지난해 7월 길에서 여고생 2명과 성인 여성 1명의 상반신을 만진 혐의(강제추행)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화가 나면 사람을 만지는 습성 때문에 생긴 일이다. A씨는 현재 지방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A씨의 어머니는 “자꾸 사람을 만져서 해당 행동을 줄이려고 약을 먹였더니 도벽이 생겼고, 그 약을 끊고 나니 이런 일이 생겼다”며 “집행유예 기간 동안 문제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2. 지적장애 2급인 B씨는 2017년 11월 한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11세 여자아이의 팔을 두세차례 만진 혐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로 기소됐다. 검찰 측은 B씨가 “피해자를 추행하기로 마음을 먹고 접근했다”고 공소요지를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정서적 친밀감의 표현으로 신체 접촉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B씨가 피해자가 싫어하자 곧바로 놓아줬던 것을 볼 때 성적 의미가 담긴 추행이 아닌 친해지고 싶은 행동으로 볼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성범죄 피해자·가해자가 되거나 그와 유사한 문제에 연루되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발생함에도 이와 관련된 조력절차나 예방교육 등 관리체계는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은 아예 성적 욕구가 없는 존재로 여기거나 지나치게 성에만 집착한다는 편향된 시각을 갖고 이들에 대한 성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허술한 발달장애인 성범죄 관리체계

22일 관련 단체와 학계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이 성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는 30명의 발달장애인이 성범죄로 수용돼 있는데 이는 성범죄로 수용된 전체 인원(204명)의 14.7%에 해당된다.



한양대병원이 지난 1월 ‘발달장애인의 성문제’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해외의 경우 발달 장애인의 성범죄율은 3.7%로 비장애인(4.0%)에 비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발달 장애인의 성범죄 재범률은 비장애인에 비해 3.5배 더 높았다. 적절한 치료와 교육이 병행된다면 재범률은 급격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명노연 변호사는 “발달장애인 성범죄는 재범률이 높은 편”이라며 “처음에는 훈방,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가 되더라도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성범죄 재발방지 교육이 필요한 발달장애인 현황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일보가 관련부처인 법무부와 경찰청,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에 확인한 결과 장애 유형을 고려한 통계는 없었다.

대신 A씨처럼 발달장애인이 성범죄를 저지르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성연 장애인차별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입원 제안을 많이 한다”며 “검찰에서 병원 입원 조건으로 기소를 중지하기도 한다”고 했다.

발달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수사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지난해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의사소통 지원을 받은 가해자는 서울과 경기가 각각 4건, 부산 2건 등 총 122건으로 집계됐다.

2015년 11월부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에 따라 경찰은 관련사건 조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2472명(2017년 기준)을 지정·운영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막상 도움을 받기 쉽지 않은 상황도 많다. 한 발달장애인 부모는 “우리 아이 사건이 접수된 경찰서에는 전담인력이 없어 피해자와 합의를 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전담경찰 인력이 많지 않은데 수사기관 특성상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인 특성 고려한 맞춤식 성교육 필요”

교육조건부 기소유예가 내려지는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6월 법무부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재범방지를 위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가족부가 2012년부터 진행해 온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교육’은 장애 유형을 나누지 않고 장애인 아동과 청소년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 특성이 고려된 체계적 재발 방지 교육이 마련되고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에서야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는 성인권교육 계획 마련에 나섰다. 발달장애인 성교육에 예산 2억3500만원이 배정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 교재 개발과 매뉴얼 제작을 하고, 하반기에는 전문가 양성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윤진용)는 지난해 12월부터 대전보호관찰소, 대전발달장애인지원센터와 협력해 ‘발달장애인 성폭력 피의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시행했다. 1대 1 맞춤형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고 일정 기간 보호관찰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시행 이후 현재까지 6명이 이 제도를 통해 관리받았다. 윤 부장검사는 “통상적인 형사 절차에 따른 처벌로는 재범 방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여러 기관과 연계해 발달장애인에 맞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양대 김인향 교수(정신의학과)는 “기존의 인지행동치료로는 효과가 부족하니 특성을 고려한 치료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고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주영하 정책팀장은 “원하지 않는 상대를 만지면 안 된다는 걸 교육적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무조건 약물로 억제하고 입원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英, 장애 자녀 ‘특별한 욕구’ 보일땐 대응법 제공

 

해외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다양한 방식의 발달장애인 서비스를 마련해 두고 있다. 영국의 부모파트너십 프로젝트(PPP)가 대표적이다. PPP는 법에 명시된 서비스로 관련 기관이 특별한 욕구가 있는 장애아동과 장애 청년의 부모 등 돌봄자들과 연계를 맺고 다양한 정보 등을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부모가 고민이 있을 때 지방정부당국 또는 학교 내 누구와 상의할 수 있는지 △부모 또는 돌봄자의 권리와 책임은 무엇인지 △아동의 욕구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지 △아동의 욕구에 대한 결정이 불만족스러울 경우 부모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관한 것들이 포함된다.

 

미국은 각 주별로 성교육에 대한 정책을 가지고 있는데 ‘플로리다주 발달장애위원회’(FDDC)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관련 지침을 마련했다. 위원회는 “장애 정도와 상관없이 공식적인 사회 성교육이 제공돼야 하고 편견없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또 무조건적으로 성적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손잡기, 포옹 등과 같은 스킨십은 두 사람이 동의를 했을 경우 자연스러운 성적 표현이며 기쁨과 인간적 친밀함의 중요한 경험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은 연방건강계몽센터 주관으로 지역사회의 성교육 전문가와 학교, 가정을 연계해 최대 10년간 장애 학생들에 대한 성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호주에는 ‘발달장애인 조기개입 서비스’가 있다. 연방정부와 각 주가 재정을 통합해 관련 부처들이 6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다양한 협력 서비스를 제공한다. 담당 공무원은 해당 가정에 재활치료 프로그램, 부모지원 프로그램 등 가능한 서비스 범위들을 안내하고, 교사와 재활치료사, 심리학자 등이 하나의 그룹을 이뤄서 통합적 지원을 한다. 특히 호주 빅토리아 남부 지역센터에서는 발달 장애 또는 그외 장애 증상을 갖고 있는 가족구성원에게 상담 및 지원을 제공하는 ‘PASS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 이용자들에게 상담, 심리학적 개입, 동료집단, 부모멘토링 등 각자 상황과 욕구에 맞는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