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의 승리(본명 이승현·29), 가수 정준영(30)씨 등 유명 연예인들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불법 촬영 동영상 등을 유포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예비 초등교사인 교대 남학생들이 여학생 외모를 평가하는 책자를 만들어 돌려보면서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들이 외모 등급뿐 아니라 여학생들의 가슴 등급까지 매겼다는 주장도 나왔는데요.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남학생들은 이미 과거의 일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사회 전반의 왜곡된 남성 문화를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잇따른 ‘교대 성희롱’ 사건…女 성적 대상으로 보는 왜곡된 남성문화 도마 위
최근 서울교대에는 이 학교 국어교육과 13~18학번 남학생이 가입된 축구 소모임에서 같은 과 여학생 사진과 개인정보가 담긴 책자를 만든 뒤, 이를 가지고 신입생과 졸업생이 만나는 대면식 때 얼굴·몸매에 등급을 매기고 성희롱했다는 내용의 고충사건이 접수됐습니다.
해당 사건을 두고 남학생과 여학생 간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인데요.
국어교육과 재학생 92명은 이달 15일 교내에 '서울교대 국어과 남자 대면식 사태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을 촉구한다'는 대자보를 통해 진상규명을 촉구했습니다.
반면 가해자로 지목된 특정 학번 남학생들은 "(해당 책자가) 단순히 새내기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 이를 활용한 성희롱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입니다.
김경성 서울교대 총장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이번 사태로 우리 대학의 명예가 실추될 위기에 처했다는 데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 없다"며 "학생들의 견해가 일치되지 않아 학내 교수 및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위원회에서 신속하고 철저히 조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조사 결과 명백히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한 학생들은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대학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졸업을 하고 교사가 된 졸업생에 대한 조사와 조치에 대해선 관련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교대는 당분간 불필요한 학생행사와 모임을 중지시키고, 긴급 성희롱 예방교육도 실시할 방침입니다.
◆“성희롱 사건, 학생이 응당한 처벌 받았던 적 없다”
학교 측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서울교대 성희롱 사건'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여학생들을 집단 성희롱한 남학생들, 초등교사가 되지 못하게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지난 14일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국어교육과 남학생들은 13학번부터 18학번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일종의 소모임이자 남자 대면식을 만들어 그 안에서 해당 년도에 입학한 여학우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성희롱을 실시해왔다"며 "해당 소모임은 남자라면 자동 가입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어교육과 남학생들은 졸업한 남자 선배들에게 새내기 여학생들의 얼굴, 나이, 동아리 활동 등에 관한 개인 정보를 문서로 만들어 공유하며 성희롱하고 얼굴을 품평해온 사실이 밝혀졌다"며 "종이에 사진, 이름, 소개글 등을 작성해서 얼굴을 평가하거나 등수를 매기는 등 외모 평가와 성희롱이 이루어졌고 여학생들이 찢긴 종이를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번 사건이) 정식 접수하여 조사 중에 있다고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성희롱, 횡령 등 어느 사건에서도 학생이 응당한 처벌을 받아온 적이 없다"며 "현재 학교 측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은 학교 성희롱 성폭력 센터에서 성희롱에 대한 교육을 받는 정도"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여학생 성희롱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16학번 국어교육과 남학생들은 현재 4학년으로, 2020학년도 초등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며 "지속적이고 집단적으로 여학생들을 품평하고 성희롱을 일삼아온 남학생들이 초등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을 성범죄자로부터 보호하고, 안전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현직교사인 졸업생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 법규상 졸업생인 현직교사를 조사·처벌하는 건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교사의 학생 시절 성 관련 문제가 뒤늦게 드러나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소급해 징계를 검토할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육공무원법 성 비위 관련 규정에는 강간·추행에 준하는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파면·해임되거나, 100만원 이상 벌금형 또는 그보다 무거운 형을 받은 경우에만 임용 결격 사유로 정하고 있습니다.
예비교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교육 도입이 늦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학생 가르치는 교사부터 성평등 교육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높아져
경인교대에서도 '단체 카톡방'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페이스북 경인교육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익명 제보에 따르면, 이 학교 체육교육과 15학번 남학생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성희롱과 욕설이 오간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제보자가 공개한 카톡 갈무리 화면을 보면, 15학번으로 명시된 한 남학생이 '휴가 때마다 XX(여학생 이름)랑 성관계하면서 군대 한 번 더 vs 대학 내내 성관계 안 하기'라며 특정 여학생을 성희롱하는 내용이 담겼는데요.
한 남학생이 또 특정 여학생을 지칭하며 심하게 욕설을 하자 다른 학생들은 웃으며 방관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남학생이 여자친구와 싸웠다고 말하자 한국 여성은 3일에 한 번씩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의미인 '삼일한'이라는 용어로 응수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제보자는 "증거가 이 정도뿐이라 안타깝지만, 이에 더해 더 많은 성희롱이 오갔음을 확인했다"며 "직접 가담한 가해자뿐만 아니라 단톡방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졸업할 때까지 침묵으로 방관한 남학우들에게도 사과를 요구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같은 과 남학생들은 '체육교육과 15학번 남학생 일동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뒤늦은 해명에 나섰습니다.
이들 남학생은 "여성은 단순한 성적인 존재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이지만 저희는 그것을 망각했다"며 "이 부분은 저희의 명백한 잘못이며 성적 발언의 대상이 되었던 피해 학우에게 꼭 사과의 표현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교사로서 자질이 의심될 정도의 언행으로 상처 입은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언행들이나 혐오 발언을 교사가 모범을 보이지 못한 점은 무척이나 잘못된 점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피해자들은 예비 초등교사거나 이미 교사로 일하고 있을 이들이 아무런 의식 없이 이 같은 성희롱을 일삼은 만큼 일회성 사과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입니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잘못된 성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크기 때문입니다.
일부 학생은 가해자 실명이 공개된 사과문이나 대학·교육청 측의 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경인교대 측은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성희롱을 일삼는 단톡방 문화를 가볍게 여기는 인식에 대한 지적과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며 각 대학교뿐만 아니라 교사들까지도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피해女 ‘남성적인 외모’라며 성폭행 가해男 무죄 선고한 여성 판사들
한편 이탈리아에서 성폭행 피해 여성이 ‘너무 남성적인 외모’라며 가해자들의 성폭행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뒤늦게 알려져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해당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판사 3명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나 적지않은 충격을 주고 있는데요.
영국 일간지 가디언는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도시 안코나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에 대한 2017년 항소심의 결과가 최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며 뒤늦게 세상에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두 남성은 2015년 당시 22세였던 페루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1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요.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피해 여성 외모가 ‘남자 같아서 매력이 없기 때문에’ 성폭행 피해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는 내용이 판결문에 포함됐습니다.
피고인들은 “이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그 중 1명은 휴대전화에 여성의 이름을 ‘바이킹(Viking)’이라고 저장했습니다. 3명의 여성 판사로 이뤄진 항소심 재판부는 “여성의 사진이 피고인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렸는데요.
피해 여성 변호인인 신치아 모리나로는 “이 부분이 판결문에 포함된 것 때문에 대법원에 상고했다”고 말했습니다.
피해 여성은 저녁 수업을 마치고 바에 갔다가 남성들이 약을 탄 음료를 먹은 뒤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의료진은 그가 입은 부상이 성폭행 상황과 일치하며, 여성의 혈액에서 신경안정제로 졸음을 유발하는 벤조다이아제핀 성분이 다량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외모지상주의’ 남녀갈등으로 번질 수도
이처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우리 사회에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해 있는데요.
이는 자칫 남녀 젠더(성)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겉모습으로만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은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외모를 우선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이 가장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는데요. 2015년에 조사한 5~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비만율을 보면, 체질량지수 85% 이하의 여자 청소년 중 34.7%가 자신이 살이 찐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삐쩍 마른 체형의 여자 청소년 3명 중 1명이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에서 말하는 ‘예쁘다’의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자신을 비관하고, 평균으로 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현실입니다.
일부 TV 예능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뚱뚱함’이 웃음의 소재로 쓰이는 등 미디어가 잘못된 성관념을 부추기고 있다는 질타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8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를 통해 실시한 '방송프로그램의 양성평등실태조사'를 보면, 예능 프로그램과 생활정보 프로그램 등에서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타나는 내용과 외모지상주의가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에 대한 몸매, 피부색, 얼굴형, 눈, 코, 입 등 외모에 대한 평가와 이에 따른 비하, 희화화 등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단순히 미디어 내에 소구되는 것을 넘어 구직시장에도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지나치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최근 한 구인구직 사이트가 구직자 420명을 대상으로 ‘구직 중 외모 때문에 피해를 본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43.8%다 ‘있다’고 답했습니다. 응답자 대부분(95.5%)은 채용 시 외모가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취업을 위해 성형이나 다이어트 등 ‘외모 관리’를 하는 구직자도 57.4%에 달했는데요.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미디어의 외모지상주의를 비난하는 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한 청원자는 “외모를 비하하는 말이 방송 출연자들의 입에 쉽게 오르내린다”며 “숏다리, 얼큰이, 어좁이, 대두 등의 단어들이 인격을 모욕하는 언어임에도 이런 발언을 한 진행자들은 ‘국민MC’라며 추켜세워지기까지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정부 외모 규제 논란…“경각심 일깨운 것” vs “지금이 군사독재 시대냐”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정부기관이 '성평등 방송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배포했다가 논란이 일자 뒤늦게 수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19일 ‘걸그룹 외모 지침’ 논란을 불었던 ‘성평등 안내서’에서 오해가 있는 부분을 고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같은달 18일 "정부의 외모 규제라는 일부의 비판은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 이후 하루 만입니다.
여가부는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논란이 된 '성평등 방송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한 일부 표현, 인용 사례는 수정 또는 삭제해 본래 취지가 정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프로그램 제작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을 안내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맞다고 설명하며 내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음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는데요.
앞서 여가부는 지난달 12일, 2017년 펴낸 '성평등 방송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보완한 개정판을 방송국과 프로그램 제작사 등에 배포한 바 있습니다.
해당 안내서는 외모지상주의를 지양하고, 다른 외모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이번 개정판에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한다'는 등의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됐습니다. 이는 방송에 대한 획일적인 규제가 될 수 있으며,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16일 자신의 SNS을 통해 "군사독재 시대 때 두발 단속, 스커트 단속과 뭐가 다르냐"며 주관적인 외모를 정부에서 검열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해당 안내서에 대해 갑론을박이 일었는데요. 상당수 누리꾼들은 정부가 방송 출연자의 외모까지 간섭하려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일부에서는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모습이 외모에 대한 강박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에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과도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히는 등 이번 가이드 라인에 문제가 없다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