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물리적 폭행이나 협박, 사진·영상 유포 등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안전 이별'이라는 씁쓸한 단어도 회자되고 있는데요.
폭력 이후에도 가해자와 인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데이트 살인을 포함하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중반부터 대중매체를 통해 처음 등장했습니다.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가 2009년부터 '데이트 폭력 실태조사'를 발표하는 등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사회적 용어로 쓰이는 모습을 보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사건의 대중 노출 빈도도 증가했습니다.
연인 간 살인·폭행은 2000년대에 더 많이 발생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오히려 사건 수가 줄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미디어 노출 정도나 대중 주목도에 얼핏 최근 급증하거나 기승을 부리는 범죄 유형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랜 시간 꾸준히 발생돼 온 고질적인 문제였던 것입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발생한 애인 간 살인(미수 포함)은 평균 103.4건입니다. 10년 전 같은 기간인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발생한 애인 간 살인은 평균 121.4건이었습니다.
데이트 살인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우려, 관심도가 더 높아진 2010년대에 오히려 관련 사건은 줄어든 것입니다.
◆‘데이트 살인’ 사회적 우려 高高
같은 기간 애인 간 폭력 사건도 10년 전인 2000년대에 소폭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7년 사이 애인 간에 일어난 폭력범죄(강간은 강력범죄로 제외)는 평균 9049건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평균 9245건으로 더 많았는데요.
다만 폭력의 경우 2016년에 처음으로 1만건이 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2000년대 연도별로는 애인 간 폭력은 △2001년 8979건 △2002년 8223건 △2003년 8366건 △2004년 1만370건 △2005년 9556건 △2006년 9298건 △2007년 9923건이었습니다.
2010년대에는 △2011년 8256건 △2012년 8636건 △2013년 8203건 △2014년 7828건 △2015년 9078건 △2016년 1만1016건 △2017년 1만326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들 통계는 피해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명확히 구분된 수치는 아닙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물리적인 힘의 우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전문가들은 안전 이별이 어려운 이유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진짜' 이별이 어려운 것은 데이트 폭력 이후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가 반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폭력→사과→용서→폭력' 순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 데이트 폭력 재범률은 76%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번의 실수로 그치지 않는다는 방증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별 범죄를 막는 최선책은 교제 초반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는 "초기 관계 형성 시기에 데이트 폭력이 시작됐으나, 이를 자신에 대한 사랑 혹은 관심으로 해석하는 등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중 59.9%가 '교제 6개월 미만 내에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서울시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상대방이 다음과 같은 행동이 보인다면 데이트 폭력의 의심 신호일 수 있다고 조언했는데요. △큰소리로 호통을 친다 △과거를 끈질기게 캐묻는다 △많은 양의 전화나 문자를 한다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등입니다.
◆데이트 폭력 재범률 76%…교체 초반 폭력성 보이면 바로 헤어지는 게 상책
더 큰 문제는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이별을 할 수 있는 보호막이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별 이후 상대방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거부했음에도 꾸준히 연락이 왔다'고 답한 이는 20대가 40.9%, 30대가 66.7%에 달했습니다.
4명 중 1명 이상은 '상대방이 내 주변을 배회했거나 미행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자해할 것이라 협박했다'(20대 22.7%, 30대 5.6%)고 답한 이도 있었습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외부 활동을 기피(20대 36.4%, 30대 22.2%)하거나, 상황이 반복될까 봐 새로 교제를 시작 못했다'(29.5%, 33.3%)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학교 또는 직장생활 등의 유지가 어려웠다'고 밝힌 경우도 20대 22.7%, 30대 16.7%에 달했습니다.
그렇다면 데이트 폭력·살인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왜일까요.
전문가들은 국내 가부장적인 문화가 법적인 부분으로도 이어지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런 탓에 관련 사건에서 남성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가부장적 문화의 지표로 사용되는 가사분담률을 살펴보면, 한국 남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2014년 기준 OECD 통계와 한국노동패널조사를 활용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1일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통계 대상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1시간이 채 안 됐는데요.
재판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특히 살인 등 강력범죄가 아닌 이상, 데이트 폭력은 주로 특수상해나 폭행·협박 등의 혐의를 적용받아 2년 이하의 징역이나 집행유예 정도로 그치곤 합니다.
◆재판부 ‘솜방망이’ 처벌…강력범죄 아닌 데이트폭력 집행유예 그치는 경우 많아
10대 데이트 폭력도 적지 않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데이트 폭력 방지 교육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1년에 15시간으로 지정된 성교육 시간 이외 데이트 폭력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요.
미국은 20여개 주에서 '10대 데이트폭력에 관한 법'에 따라 학교장이나 이사 등의 주도로 매년 '데이트 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당 수업에서는 데이트 폭력 개념을 설명하고, 실제 사례와 피해자의 대처방안 등에 대해 배웁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을 당해 사망한 피해자는 총 16명입니다. 2017년에는 17명이었습니다.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지난해 1만8671건으로 전년(9364건)에 비해 2년 사이 두 배 가량 늘었습니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데이트 폭력 피해 심각성에 비해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는 다소 미흡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송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 1∼7월 '여성 긴급전화 1366센터 피해유형별 조치현황' 자료를 보면, 데이트 폭력 피해자 조치 건수 1만332건 가운데 수사기관 연계 건수는 3277건(31.7%)이었습니다.
수사기관 연계율은 가정폭력(16.3%), 성폭력(18%), 성매매(10.1%) 등 다른 폭력 행위 상담에 비해 데이트 폭력의 경우 압도적으로 높아 피해의 심각성을 방증했다고 송 의원은 밝혔습니다.
반면 센터가 취할 수 있는 조치 가운데 관련 기관 연계보다 더 적극적인 조치인 긴급피난처 피신 조치는 2.86%에 불과했습니다.
송 의원은 "데이트 폭력 피해 범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며 "하루빨리 데이트 폭력 범죄 요건이 법률적으로 정비돼 정부가 피해자 보호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데이트 폭력 범죄 요건 법률적으로 정비, 피해자 보호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형법상 폭행과 협박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돼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최근 여당 일부 의원이 데이트 폭력 등 관계 집착 폭력 행위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관련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데이트 폭력 삼진아웃제’ 등 반복적(3회)으로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에 대해 구속까지 고려하는 등 처벌 강화책을 내놓았으나, 재판부는 아직 이렇다 할 양형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2월22일 국정현안조정 점검회의에서 ‘스토킹·데이트 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가해자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법적 근거 없는 정부의 일방 발표는 별 실효성이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은 한결같은 지적입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