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김 전 장관은 박근혜정부에서 임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하고 그 자리에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들을 임명하게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 중에서 영장이 청구된 것은 처음이다. 구속전 피의자 심문이 오늘 이뤄진다.
정부 부처에서 직권을 남용해 조직적으로 전 정부 인사를 쫓아냈다면 여권은 백배 사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진 직후 “과거 정부의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리라 기대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출입기자단에 보냈다. 영장심사를 앞두고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균형감을 갖춘 행동인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논평에서 “이번 영장 청구는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대통령 인사권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을 비난했다. 여권이 한목소리로 법원을 향해 영장을 기각하라는 외압을 가한 것이나 진배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유린한 국가 폭력”이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심에서 징역 3년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민주당은 “법원이 대역 죄인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고 성토했다. 그런 집권층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선 유독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 청와대는 “통상 업무 일환인 체크리스트”라고 둘러댔다. 법치를 우롱하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전 정부 인사 몰아내기는 환경부에만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환경부 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은 전국 330개 공공기관장과 감사들의 임기 등이 적힌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고 폭로한 적이 있다. 법무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정부 부처에서도 부당한 퇴진 압력이 있었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방조나 묵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꼬리를 문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철저한 단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은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말고 성역 없는 수사로 낱낱이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