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비혼 등 젊은 세대의 결혼이 줄자 혼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저출산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나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0.9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이란 불명예를 얻었다. 7년간 연속 하락한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을 두고 한창 연애할 ‘2030 세대’의 탈 연애 바람도 한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44세 미혼 남녀(남성 1140명, 여성 1324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연애를 멀리하는 사유로 △아직 적당한 상대가 없거나 이성 교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일 또는 학업에 열중하고 싶어서 △금전적 부담 때문에 등의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데이트 비용 등 금전적 부담을 놓고는 남녀 간 인식차가 뚜렷했다.
◆데이트비 부담 느낀 남성, 여성의 6배
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금전적 부담에 이성을 만나지 않는다’는 응답이 남성에게서 6배 높게 나타났다. 남성이 연애 시 느끼는 금전적 부담이 여성보다 더 많은 것으로 여성의 경우 단 1.5%만이 금전적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또 경제적 여유와 관련성 있는 ‘취업’이 연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성 교제 중이라고 답한 이들은 남성 25.8%(294명), 여성 31.8%(421명)로 남녀 모두 취업자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 측은 “취업자의 연애가 높게 나타난 건 사회생활로 이성을 만날 기회가 더 많고 , 교제 상대로 무직자와 비교해 경쟁력이 있는 데다 데이트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성 10명 중 7명, 여자친구보다 데이트비 더 지출
지난 1월 국내 한 결혼정보업체가 20~30대 남녀 4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데이트비 분담 비율로 ‘남성 6 대 여성 4’가 36.7%로 가장 많았다. 이어 ‘남성 7 대 여성 3’ 28%, ‘남성 8 대 여성 2’ 7.6%로 남성이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데이트 비용을 썼다. 여성이 남성보다 데이트비를 더 부담하는 커플은 3.6%에 그쳤다.
데이트비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커플도 적지 않았다. 여성 응답자 중 ‘남성이 데이트비용을 아끼는 것에 불만을 느껴 다퉜다’는 비율이 48.4%나 됐다. 이어 ‘수입이 같지 않은데 더치페이를 요구하는 것에 화를 냈다’(33.2%), ‘남성이 데이트비를 내며 너무 생색내는 거 같다’(9.2%)는 의견도 있었다.
남성 응답자도 불만을 내비쳤다. ‘남성이 데이트비를 더 내는 걸 당연시하는 여성들 생각에 마음 상했다’는 비율이 71.2%에 달했고, 19.5%는 ‘항상 내가(남성이) 더 많이 부담해서 불만’이라고 했다.
◆20대 남성일수록 데이트비 부담과 또래여성보다 상대적 박탈감 하소연
데이트비 부담은 또래 여성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20대 젊은 남성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이들은 취업 준비와 알바를 전전하는 빠듯한 형편에 데이트비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볼멘 소리와 함께 군복무 기간으로 사회 진출 시 또래 여성보다 불리하다고 하소연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세~29세 청년 취업률은 2011년부터 여성이 앞서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남성 56.1%, 여성 59.6%로 3.5%포인트 벌어졌다. 또 취업했거나 구직 활동 중인 20대 경제활동 참가자 비율 역시 2012년부터 여성이 앞선다. 특히 취업에 필요한 어학연수·인턴 등 현장 경험은 여성이 남성보다 두배 이상 많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20대 여성에 비해 급락한 것을 두고도 이런 현상과 연관짓는 분석이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지난달 25일 MBC 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기성세대는 ‘남자들이 기득권자이자 강자’라고 하면 대부분 수긍하지만, 지금 20대 남성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 20대 남성들은 “스스로 기득권도 아니고 강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대 남성에게는 사회가 희생을 강요해 역차별당한다는 분노가 있다”며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지금 20대 남성들은 과거 세대와 비교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