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노동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이 1967시간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전년보다 소폭 감소한 수치입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후진국형 '과로사회' 오명을 벗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고용노동부의 '2019년 1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용직 1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1967시간으로, 전년(1996시간) 보다 29시간(1.4%) 감소했습니다.
상용직 1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6년부터 해마다 1∼2%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상용직 5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지난해 1986시간으로, 전년(2014시간)보다 1.4% 줄어 처음으로 2000시간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OECD 국가별 노동시간은 상용직 5인 이상 사업체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합니다.
국내 연간 노동시간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지만, 2016년을 기준으로 한 OECD 연평균 노동시간(1763시간)을 크게 웃도는 수준입니다.
◆작년 韓 근로자 평균 노동시간 1967시간…전년 대비 1.4%↓
작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지만, 연간 노동시간 감소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시간 단축이 300인 이상 사업체에 한정됐기 때문입니다.
다만 300인 이상 사업체 작년 하반기 초과근로시간 증감을 보면 노동시간 단축의 영향이 일정 부분 나타나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 30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 월평균 초과근로시간은 11.7시간으로, 전년 동기보다 0.4시간 줄었습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30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 월평균 초과근로시간은 20.1시간으로, 전년 동기보다 1.8시간 감소했습니다.
제조업 중에서도 식료품 제조업과 고무·플라스틱제품 제조업은 작년 하반기 초과근로시간 감소 폭이 각각 12.4시간, 10.5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의 영향이 뚜렷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민간연구기관인 파이터치연구원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연간 일자리가 40만1000개 줄고, 임금소득이 5조6000억원 감소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파이터치연구원은 기획재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설립된 비영리 재단법인입니다.
김재현 연구위원은 최근 '주 52 근로시간 단축의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는데요.
김 연구위원은 주 52시간 근무제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0조7000억원, 소비는 5조5000억원 각각 감소할 것이라며 정책 보완을 주문했습니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 시 기업들이 연간 23만5000개 숙련공(비반복적 노동)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연구를 근거로 제시했는데요. 숙련공은 부족한 근로시간을 단기간에 신규 고용으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김 위원은 "임금소득 증가는 직업 만족도를 높여주지만, 근로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승분 크기가 작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강조했습니다.
◆파이터치연구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임금소득 5조6000억 감소할 듯”
지난해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직장인들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기계발이나 취미활동을 위한 지출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교육비와 오락문화 지출 증가율이 각각 9년과 7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는데요. 회식 보다는 집에서 가볍게 와인을 마시는 추세도 나타났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교육비 지출(명목)은 42조2479억원으로, 전년보다 3.2%(1조3107억원) 늘었습니다.
교육비 지출 증가율은 2009년(3.2%)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금액 기준으로 사상최대였던 2011년(42조8121억원)에 육박했습니다.
교육비 지출은 2012년부터 4년 연속 감소했는데요.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2016년(0.5%) 증가세로 돌아섰고, 2017년에 2.8% 늘었으며, 지난해에는 증가율이 더 높아졌습니다.
그 배경으로는 학생 1인당 사교육비 지출 증가 추세에 더해 지난해 7월 주52시간제 도입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야근이 줄어들고, 개인 시간이 많아지자 퇴근 후 어학원이나 문화센터를 찾는 2030대 직장인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문화센터 등에서는 직장인들을 겨냥해 평일 저녁에 강좌를 늘리거나 시간대를 조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퇴근 후 ‘내 시간’ 늘어 좋지만 여가에 쓸 돈이 없네요”
지난해 오락문화 지출은 67조2357억원으로 4.6% 증가했습니다. 2011년(5.8%)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입니다.
지난해 소매판매액 지수를 보면 오락, 취미, 경기용품이 전년보다 12.3% 늘어나면서 2010년(13.0%) 이후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유통업체에서는 아웃도어, 캠핑, 게임용 제품 등의 매출이 지난해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스크린야구장, 실내양궁장 등 스포츠시설운영업 사업자가 지난해 27.9% 늘었습니다. 실내스크린골프와 헬스장도 각각 9.1%와 6.9% 증가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드는 레저활동인 낚시 인기도 높아져서 유통업계에서는 관련 상품을 한 데 모은 코너를 오픈하기도 했습니다.
밤 늦도록 회식을 하기 보다는 집에서 도수가 낮은 술을 가볍게 즐기는 '홈술' 흐름도 나타났습니다.
퇴근길 CU(씨유), GS25,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에서 1만원대 저가 와인이나 4캔에 1만원 맥주를 사서 한 두잔 마시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와인 수입은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보면 와인 수입중량은 4만291t으로 전년 보다 11.5% 늘었습니다. 맥주 수입중량도 17.1%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수입 맥주의 공습에 저가 와인의 추격까지 거세지면서 국산 맥주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때 대형마트 주류매출 1위를 기록했던 국산 맥주가 지난해 수입 맥주와 와인에 밀려 3위로 추락했다는 집계 결과가 나왔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홈술 문화가 확산한 데다 수입 맥주는 '4캔에 1만원'하는 가격 행사가, 와인은 부담 없는 가격에 마실 수 있는 값싼 와인이 쏟아지면서 매출을 견인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 정책 시행…실질임금 감소, ‘투잡’ 뛰는 직장인 증가
주52시간 근무제 등 근로시간 단축 정책이 시행되면서 사회, 경제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실질임금이 줄어 이른바 ‘투잡(Two job)’을 하는 직장인이 늘어났습니다.
내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으로 확대할 경우 '투잡 경쟁'도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번달 4일까지 30대 이상의 직장인 2050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아르바이트 현황’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현재 직장생활과 병행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답한 직장인이 18.6%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보다 0.2%포인트 증가한 것입니다. 연령별로 보면 투잡을 하는 직장인 비율은 30대가 16.0%, 40대가 19.8%, 50대가 23.0%로 연령이 높을수록 많아지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미혼 직장인(17.5%) 보다 기혼직장인(19.4%)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가장의 어깨가 그만큼 무겁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각종 수당 등이 줄어들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들이 투잡에 뛰어들기 때문으로 분석되는데, 실제 이번 조사에서 직장생활과 병행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복수응답)에 대해 ‘수입을 높이기 위해 한다’는 응답이 85.8%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여유 시간을 유익하게 활용하기 위해’는 31.5%, ‘하고 싶었던 일을 경험해보기 위해’는 11.5%였습니다. 특히 내년부터 중소기업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확대할 경우 임금소득 감소로 투잡에 나서는 직장인들이 급증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뜩이나 2년 연속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으로 1020대 청소년 알바자리마저 줄어드는 실정이어서, 알바 구인난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