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미국 시간) 오전 9시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가 있었다. 신제품 발표회인데 제품이 없다. 뭔가 짜릿하고 기상천외한 기기나 기구를 기대했었는데 아무것도 없다. 대신 평범한 서비스만 잔뜩 내놓았다. TV, 게임, 뉴스, 그리고 카드 결제 서비스다. 단어로 나열하니 더욱 볼품없다. 하지만 여전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자신감에 대한 놀라움이다. 평범한 생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서비스가 세상을 움직일 것이라 확신하는 자신감이 놀랍다. 왕자병 환자로까지 느껴진다. 두 번째, 과감한 변신에 대한 놀라움이다. 애플은 누가 뭐라 해도 하드웨어 회사다. 아이폰 판매로 1조달러 시가총액을 달성한 회사가 이제 서비스업에 진출한다는 것인가. 수영선수가 UFC 이종 격투기 무대에 데뷔한다는 것과 진배없다. 보통상황이라면 부상만 면해도 행운이다. 하드웨어 회사는 내부 임직원의 인사고과, 조직 구성, 업무 프로세스 등이 하드웨어 제품 출시에 최적화돼 있다. ‘제품’ 출시일정이 결정되면 그로부터 각종 부품 생산, 조달, 조립, 테스트 일정이 수립된다. 이런 조직이 서비스 산업에 진출한다고 한다. 애플의 과거를 곱씹어 보면서 서비스 시장 진출이라는 이번 발표에 실망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무모함에 가까운 도전에 ‘역시’라는 찬사를 보내게 된다.
애플은 새로운 시도에 전혀 망설임이나 거리낌이 없다. 애플 유전자(DNA)에는 무엇이 잠재돼 있을까. 애플제품을 분철해서 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잘 만든 제품이다. 40년간 출시된 애플의 제품을 연속선상에 놓고 그들이 도입한 기술, 폐기한 기술을 시간 축에서 살펴보면 소름끼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애플 제품의 발전과정에서 개선과 혁신을 넘는 ‘파괴’의 역사가 보인다. 세계 최초로 컴퓨터에 마우스 장치를 도입하고 본체와 모니터가 하나로 합쳐진 컴퓨터를 출시했다. 이 컴퓨터가 바로 저 유명한 ‘애플 매킨토시’다. 1984년의 일이다. 컴퓨터에서 플로피디스크를 제거, CD롬 드라이브 제거, USB 포트 제거 모두 애플이 처음으로 시도한 일들이다. 급기야 2016년 9월, 애플은 이어폰 잭이 없는 아이폰 7을 출시한다. 하나하나가 모두 당시의 상황에서는 황당한 결정이었다. 애플만이 할 수 있었던 결정이다.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보다 필요없는 기술을 폐기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감한 결단을 필요로 한다. 잘해야 본전, 성공해도 티가 안 나기 때문이다.
원유집 카이스트 교수 컴퓨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