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총리직 걸었지만… 브렉시트 ‘오리무중’

英 하원, 의향투표 8개안 모두 부결… ‘대안찾기’ 실패 / 관세 잔류 ‘옵션J’ 최저 8표차 부결 / 4월 추가토론 또 대안 표결 예정 / 메이, 투표 직전 “합의안 가결 땐 사퇴할 것” 공언에도 강경파 ‘냉담’ / 제3승인투표 통과 여전히 불투명 / 차기 총리엔 존슨·랍 전 장관 물망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카오스(chaos·혼돈).’

 

선진적 정치문화를 자랑하던 영국이 미국 CNN방송 표현처럼 브렉시트 하나로 대혼란에 빠졌다. 영국 하원은 27일(현지시간) 이틀 뒤로 예정됐던 브렉시트 시한을 뒤로 미루는 데 동의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풀 것인지를 정하는 ‘의향투표’(indicative vote)에서는 상정된 8가지 대안을 모두 거부하며 갈팡질팡했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난제 해결을 위해 사퇴 카드까지 꺼내들며 배수진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영국 하원은 이날 의향투표를 실시하고 필요할 경우 다음달 1일 추가 토론 및 표결을 진행하는 내용의 의사일정안을 찬성 331표, 반대 286표로 가결했다. 의향투표란 하원의 과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브렉시트 대안을 찾기 위해 제안된 여러 옵션에 대해 투표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하원은 의원들이 제출한 15개 대안 중 8개 안을 상정해 격렬한 토론 끝에 표결을 실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부결’이었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유럽연합(EU)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 안과 더불어 아무런 합의 없이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 안까지 다시 등장했지만 모두 과반 문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영국 전역을 영구적·포괄적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하는 ‘옵션 J’가 가장 적은 표차(8표)로 부결됐다.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국민투표로 최종 결정하도록 한 ‘옵션 M’(찬성 268, 반대 295)은 찬성표가 이보다 많았지만 반대 역시 23표 더 나오며 거부됐다. 다만 이번 투표에서 소프트 브렉시트 관련 제안이 다수를 이뤘고 국민투표 관련 제안에 찬성표가 가장 많이 나왔으며, 노딜에 대한 반대 성향이 비교적 강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메이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히며 나름의 타개책을 제시했지만 하원 주도 의향투표에서도 길을 정하지 못하면서 정국은 더욱 꼬여가는 모양새다. 메이 총리는 의향투표 직전 보수당 평의원 모임인 ‘1922 위원회’에 참석해 이미 두 차례 부결된 브렉시트 합의안이 3차 승인투표에서 가결되면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브렉시트 이후 EU와의 미래관계 모색은 차기 총리에게 맡기겠다는 선언으로 보수당 내 강경파의 마음을 돌리려 한 것이다.

영국 하원이 27일(현지시간) 의향투표에 오른 브렉시트 관련 대안 8가지를 모두 부결시킨 소식과 함께 테리사 메이 총리의 착잡한 표정이 담긴 사진을 실은 일간 가디언의 28일자 1면. 가디언 트위터 캡처

메이 총리는 사퇴 시점을 못 박지 않았으나 현지 언론들은 오는 6월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끝으로 물러날 것으로 내다봤다. 차기 총리로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도미니크 랍 전 브렉시트장관,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 등 8명이 거명된다.

 

메이 총리는 과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29일 3차 승인투표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내 강경파가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이어서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날 의향투표 결과 발표에 앞서 영국은 당초 29일로 예정됐던 브렉시트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브렉시트 시기를 변경하는 정부 행정입법안이 하원에서 찬성 441표, 반대 105표로 가결되면서다. 이에 따라 영국은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 시 4월12일, 합의안 통과 시 유럽의회 선거 직전인 5월22일까지 EU 탈퇴 시간을 벌게 됐다. 끝까지 합의안이 부결되면 영국은 EU 요구대로 4월12일까지 노딜 브렉시트를 선택하거나,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한 뒤 브렉시트를 ‘장기 연기’하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