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 의견 감사보고서 결정타… 항공사 수장 또 ‘불시착’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사퇴 왜 / 막대한 추가부실 드러나 파문 / 그룹전체 유동성 위기로 확산 / 전문경영인체제로 재편 예상 / 아들 박세창 건재… 지배력 유지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와 관련한 금융시장 혼란 초래에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내려놓겠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8일 이 같은 입장을 밝히며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룹 회장은 물론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2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도 모두 내려놓았다. 이로써 박 회장은 19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52년간 몸담은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박 회장이 전격적인 퇴진을 결심한 데는 지난 21일 제출된 아시아나항공의 ‘한정’ 의견 감사보고서가 결정타였다. 이 감사보고서 파문으로 아시아나항공은 이튿날 주식거래가 정지됐고, 25일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다행히 26일 감사 의견을 ‘적정’으로 정정한 감사보고서를 다시 제출한 뒤 주식거래는 재개됐지만, 이때 드러난 막대한 추가 부실 탓에 또 한 번 시장이 술렁였다. 수정된 최종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연결기준)는 수정 전보다 1400억원 정도 늘었고 부채 비율도 625%에서 649%로 급등했다. 별도기준 부채 비율은 무려 814%였다.

 

이러한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은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 확산으로 이어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는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IDT로 이어지는데, 아시아나항공은 그룹 전체 연간 매출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

 

지난 2018년 7월 4일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기자회견에서 사과하는 박 회장 모습.

아시아나항공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도 박 회장의 거취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 등은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렸다. 신용등급(BBB-)이 투자부적격인 BB+으로 낮아지면 아시아나항공은 1조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조기상환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룹에는 그만한 자금이 없다.

 

29일 열리는 금호산업의 정기 주주총회도 부담이었다. 이날 주총엔 박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돼 있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대한항공 주총에서 대표이사 연임에 실패한 것처럼 금호산업 주총에서도 회사 경영 악화 등에 대한 그룹 총수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컸다.

 

박 회장 퇴진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재편된다. 그룹은 일단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비상경영위원회에는 각 계열사 사장단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1972년 금호그룹에 입사해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금호고속 등 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거쳤다. 그룹은 또한 이른 시일 내에 외부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영입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박 회장이 여전히 그룹의 대주주이고 아들인 박세창 이시아나IDT 사장이 비상경영위원회 구성원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퇴진 이후로도 그의 그룹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물론 대주주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 퇴진 소식에 이날 아시아나항공 주식은 전 거래일보다 2.92% 오른 352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15.05% 오른 3935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주식이 상승 마감한 것은 지난 15일 이후 9거래일 만에 처음이다. 거래량도 1529만여주로 전날의 2배 수준으로 늘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