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딱 전용칸 만들어라. 지하철 타겠다고 기어 나와서 다른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한다.”
“노인들 나와서 자리만 차지하고 시간 때운다. 지하철은 그들의 사랑방이 아니다.”
“노인들 냄새나니까 못 나오게 막아라.”
익명에 기댄 ‘온라인 노인혐오’가 그칠 줄 모른다. 틀니를 딱딱 부딪힌다는 ‘틀딱’은 새롭지 않으며, 시끄러운 할머니를 뜻하는 ‘할매미(할머니+매미)’와 연금을 축낸다는 ‘연금충(연금벌레라는 뜻)’이라는 단어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노인 관련 기사 댓글에서 발견된다. 혐오의 사전 뜻풀이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다.
◆무임승차 기사에 기다린 듯 ‘노인혐오’…들어봤는지 질문했다
“지난해 서울지하철 승객 1명을 태울 때마다 510원씩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승객의 약 15%를 차지한 무임승차가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은 전체 손실액의 66% 수준인 3540억원이며, 비중도 매년 높아졌다.”
최근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된 후 때를 기다린 듯 노인혐오가 이어졌다. “노인들의 무임승차가 없으면 적자도 안 난다”거나 “노인들이 지하철을 점령했다”는 식의 험악한 댓글이 쏟아졌다. 시니어패스로 불리는 ‘노인 승차권’을 부정사용하다 적발된 승객이 한해 2만여명이라던 서울교통공사의 과거 통계는 소용없었다. ‘무임승차=노인의 잘못=노인혐오’라는 공식을 만든 셈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해 9월 한 달간 반인륜적 패륜 행위 조성과 사회 약자 혐오감 표출을 이유로 삭제한 인터넷 게시물 497개 중에도 “길거리 할배 새끼들 다 죽여 버리고 싶다” 등 이유를 알 수 없는 노인혐오 글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간베스트 저장소·디시인사이드·워마드에서 글이 퍼졌으며,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도 비슷한 글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최근 만난 60대 이상 노인 15명에게 혐오표현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모른다는 이에게 단어의 뜻을 설명하자 한 70대 노인은 “그런 말을 써서 얻어가는 게 뭐냐”고 되물었으며, 다른 60대 노인은 “무섭다. 초등학생인 우리 손자는 그러지 않으리라 믿는다”고 걱정했다.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지난 23일 서울시 동작50플러스센터에서 열린 노인혐오 주제 발표에서 강연자로 나선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의 “혐오 표현을 직간접으로 접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노인복지 분야 관계자와 노인들을 포함한 참석자 30여명 중 손을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부는 ‘틀딱충’ ‘연금충’ ‘할매미’를 언급한 자료에 놀란 분위기였다. 그런 말을 정말 들었더라도 손들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려움·부정적 이미지가 노인혐오로…익명 ‘동조심리’도 영향
노화의 두려움과 ‘빈곤한 노인’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노인혐오를 유발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에는 젊은 층과 배치되는 노인의 정치 성향이 영향을 줬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혐오는 특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환경에서 정도가 더욱더 심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한국성서대학교 산학협력단이 2017년 내놓은 ‘노인인권종합보고서 작성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는 “청장년의 노년기 두려움과 노인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방치하면 노화공포증이나 노년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조사에서 만 18세 이상 65세 이하 응답자 500명 중 약 80%는 “노인세대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세대갈등이 심한 것 같다”고 답했다. 보고서가 나온 후에도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김 대표는 몇 년 사이 생긴 ‘태극기 부대’라는 노년의 정치 성향에서 비롯한 이미지를 노인혐오 이유 중 하나로 지목했다. 일각에선 폐지 줍는 노인, 혼자 사는 노인, 하루 세 끼조차 먹기 어려운 노인 등 언론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 혐오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통화에서 “노인을 부정적으로 다룬 기사나 특정 사건이 노인혐오를 촉발할 수 있다”며 “소수의 혐오에 동조심리가 생기면서 다수 혐오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익명 보장 시 공격 성향은 대면보다 6배 정도 높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며 “상대방이 앞에 있으면 수위를 조절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근 화제가 된 전국노래자랑 할아버지나 평생 모은 돈 수백억원을 지난해 대학교에 기부한 노부부 기사에서 노인혐오 댓글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누구에게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대목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