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친환경차 장려 사업은 올해로 10년을 맞는다. 2009년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세제 혜택이 주어졌고, 2012년에는 전기차 세제 혜택에 이어 구매보조금까지 지급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모두가 잘 아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원이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가며 친환경차 구매를 장려하는 이유다. 그러나 정작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고위공직자들이 과연 사적인 영역에서도 환경 문제를 고민하며 자동차를 구매하는지는 물음표다. 1일 ‘2019년도 정기 재산변동사항 신고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들은 자동차를 단지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전체 일반 승용차(관용·영업용 제외) 가운데 2000㏄ 이상은 25.7% 수준이다. 고위공직자들은 우리나라 전체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비율로 대형차를 몰고 있는 것이다. 중형차(1600∼2000㏄ 미만)는 271대(26.5%), 소형차(1000∼1600㏄ 미만)는 120대(11.7%)였다. 1000㏄ 미만의 경차는 29대(전기차 포함, 2.8%)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배기량이 크면 연비가 낮아져 그만큼 연료소모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다. 신고된 차량 가운데 배기량 1위는 이상직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의 2012년식 에쿠스VS500으로 5038㏄에 이른다. 이 차는 1㎞ 달릴 때마다 이산화탄소 265g을 내뿜는다. 하이브리드에서도 그랜저와 렉서스es300h 같은 대형차가 주종(26대·59.1%)을 이뤘다. 전기차가 1대뿐인 것도 대형차 선호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최근까지 출시된 전기차들은 아이오닉, SM3, 리프 등 중형차 이하가 대부분이었다”며 “대형차를 선호하는 마음이 전기차 같은 친환경차 구매를 망설이게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주무부처인 환경부라고 다른 건 아니다. 환경부와 산하 위원회, 산하 공공기관, 기상청의 고위공직자들 역시 대형 내연기관차 선호가 뚜렷했다. 이들이 신고한 26대의 차량 중 대형차가 14대(53.8%)였다. 연료별로는 휘발유와 디젤이 각각 15대와 8대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임명돼 지난 2월 재산을 신고했다. 이에 따르면 그는 본인 명의의 2018년식 G80(배기량 3342㏄)과 차남 명의의 2017년식 티구안(배기량 1984㏄)을 신고했다. 폭스바겐의 티구안은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건인 ‘디젤 게이트’를 일으킨 차종이다.
권경업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은 배우자 명의로 2007년식 스타렉스밴과 2011년식 제네시스를 신고했다. 스타렉스는 경유차이고, 제네시스는 배기량 3342㏄의 대형차다.
김종석 기상청장은 본인 차가 3대나 있었는데, 아반떼를 뺀 두 대가 대형차(그랜저TG, G80)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과 최흥진 기상청 차장은 모두 경유차를 신고했다. 홍정기 4대강 조사평가단장만 K7 하이브리드 신차를 매입했다고 신고해, 간신히 ‘환경부 고위공직자 친환경차 0대’의 오명을 피했다.
시도지사가 신고한 20대의 차량도 휘발유(16대)와 디젤(2대)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4명을 빼고는 모두 2000㏄ 이상의 차량을 보유해 대형차 선호가 유독 심했다.
송 사무처장은 “정부에서 ‘환경을 생각해 작은 차, 친환경차를 타자’고 홍보하지만 본인들 스스로도 실천하지 않는데 일반 국민이 얼마나 호응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