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익 눈먼 정부·기업·로비스트 저개발국 ‘환경 불평등’ 합작”
개서트 교수는 환경 불평등이 일어나는 원인으로 국익에 가려진 ‘비양심’을 꼽았다.
“지난 20세기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약소국을 식민지화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투자와 교역이라는 이름의 시장경제가 발달한 시기입니다. 극도로 가난한 나라들은 외국 자본을 통해 성장하길 바랐고, 선진국과 외국 투자자들은 저개발국의 낮은 임금과 느슨한 규제를 이용했습니다. 위험하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저개발국으로 이전하는 게 양쪽 모두에 경제적으로 이득이었죠.”
미국은 전 세계에서 환경정의에 가장 먼저 눈을 뜬 나라다.
1960년대 시민사회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990년엔 연방정부 차원의 환경정의 워킹그룹이 만들어졌다. 이들의 권고로 1992년에는 미 환경보호청(EPA)에 환경정의국이 설치됐다.
“1970년대 후반 러브커낼(Love Canal) 사건과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로 잘 알려진 1980년대 지하수 오염사건 등이 계기가 됐습니다.”
러브커낼 사건은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 마을 러브커낼에서 일어난 유해폐기물 불법 매립 사건을 말한다. 화학회사(후커 케미컬 컴퍼니)가 이곳에 버린 어마어마한 양의 폐기물로 주민들은 기형아 출산, 심장병, 암 등 환경재앙을 겪었다.
오랜 노력에도 인종과 경제 수준에 따른 환경 불평등은 미국 내에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EPA가 부처에 준하는 기관이지만,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축구공 신세일 때가 많죠. 환경정의는 노동자 권리와도 떼놓을 수 없는데, EPA 권한이 여기까지 미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법과 집행은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고, 시민들도 언론이나 학교교육을 통해 안전한 주거·노동 환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무시할 경우 (정치인이나 기업은) 정치경제적인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인식도 퍼져있고요.”
그는 미국 등 선진국이 보다 깨끗한 물과 공기를 누리는 건 시민사회의 오랜 투쟁과 전문 연구, 제도 개혁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10대 시절 작은 철강부품 공장에서 뜨거운 유기용매 증기를 쐬며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교사, 작가, 기자 등을 거쳐 산업보건 전문가가 됐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환경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민단체와 국제기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는 시민과 가까이 있으면서 언론과 각종 토론회, 교육을 통해 의제를 만들어갈 수 있죠. 국민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선 이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국제적으로도 유엔환경계획(UNEP)이나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기구 등 국제단체가 이런 역할을 수행해줘야 하죠.”
다음달 서울에는 WHO 환경보건센터가 설치된다. 독일 본에 한 곳이 있고, 아시아·태평앙 지역에는 이번에 최초 설립되는 것이다. 그는 WHO 환경보건센터에 기대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 세대가 환경정의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환경 불평등을 해결하는 건 매우 고단한 싸움입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요. 젊은 세대가 횃불을 드는 마음으로 환경정의를 이뤄나가길 바랍니다.”
◆ “사회 뒤흔든 가습기살균 사태 ‘환경 정의’ 뼈아픈 교훈 남겨”
2011년 여름 가습기살균제가 독극물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로부터 8년. 지금까지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만 수천명. 검찰 수사는 ‘진행형’이지만, 대중의 관심에서는 자꾸 멀어지고 있다.
최예용 부위원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환경정의 측면에서 여러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고 강조했다.
“가장 집중적인 피해를 본 집단은 생물학적 약자인 어린이와 산모, 노인, 환자들입니다. 신체적으로 취약한 이들일수록 가습기살균제를 많이 썼고, 가장 큰 피해를 봤죠.”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정부가 판정한 폐질환자(생존) 4050명 중 32.5%가 18세 이하다. 사망자 1241명 중에는 23.6%가 18세 이하, 47.7%는 60세 이상이다.
그는 또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나 헨켈 같은 영국·독일 기업들은 자국에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같은 유해물질로 흡입 가능한 제품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있으면서도, 우리나라의 느슨한 규제를 이용해 이윤을 추구했다”며 “전형적인 환경 부정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1980년대 말부터 환경운동가로 활동한 그는 2005년 전후로 석면 문제에 뛰어들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유해물질을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이전하는 걸 ‘공해수출’이라고 한다. 석면과 가습기살균제, 플라스틱 폐기물 모두 여기 포함된다. 공해수출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인지, 선진 제도가 뒤따라가지 않는 게 문제인지 궁금했다.
“환경정의라는 게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개념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공해수출은 그 자체로 문제죠. 자기한테 해로우니까 약한 나라로 보내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시장논리나 경제 발전 수준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해수출을 원천적으로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최소한 공해를 수출할 거면 위험성, 예방 방안, 대체 기술 등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역할을 하라고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기구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는 국제기구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활동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면 폐해가 알려진 게 수십년 지났고, 웬만한 선진국은 이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런데도 석면의 국가 간 이동은 지금도 자유롭잖아요. 국제기구에서도 정부 간 파워게임, 산업계 논리가 작동하는 탓이죠. 시민사회 단체의 압박으로 5∼6년 전 200만t에 이르던 생산량이 100만t까지 떨어진 게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겠네요.”
바늘구멍 같은 환경오염 피해 구제에도 쓴소리를 했다.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터지면서 그때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모두 대책을 내놓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래서 나온게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에요. 있으나 마나 한 법 만들면 뭐 합니까.”
그의 지적대로 지금까지 피해구제법으로 구제급여를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그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더럽히지 말자’ 수준을 넘어 환경약자가 누구인지, 피해가 집중되는 곳은 어디인지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 눈에만 안 보이면 된다고 오염시설·유해물질을 치워버리면 어딘가는 쌓이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김포 거물대리 같은 사례가 있잖아요. 세계일보가 이번에 환경정의를 짚어본 건 상당히 의미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시공간을 확장해 환경 문제를 바라볼 때입니다.”
글 윤지로 기자, 사진 서상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