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 압박하는 정부… ‘주파수 경매’로 수조원 벌어

국내에서 5G(세대) 이동통신이 개통됐다. 4차 산업혁명의 필두 기술로 꼽히는 5G는 기존의 4G와 비교해 20배 가량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5G가 상용화하면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loT), 자율주행 자동차,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에 폭넓게 사용될 전망이다. 5G 개통을 앞두고 요란스러운 배경이다. 다만 이용자들이 관심사는 무엇보다 5G 요금제로 보인다. 5G가 아무리 최고 성능의 기술을 장착했다고 해도 가격 장벽이 높으면 주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국내 이동통신 3사가 공개한 5G 요금제를 두고 소비자들은 대체적으로 ‘비싸다’는 반응이다. 시민단체들도 이통 3사의 5G 요금제가 4G 요금제와 비교했을 때 고가 요금제 위주로 책정됐다고 비판한다. 이용 부담이 덜한 중저가 요금제가 없다는 점에서다. 5G가 4G에 비해 요금제 선택의 폭이 좁고 가격도 비싼 것은 맞다. 하지만 이통 3사는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호소한다. 바로 정부가 가져가는 어마어마한 ‘주파수 값’이다.

 

◆5G 요금제, 5만5000원부터 시작···이용자는 ‘가격 장벽’ 체감

 

3일 SK텔레콤이 5G 요금제를 발표하면서 이통 3사의 5G 요금제가 모두 확정됐다. SK텔레콤의 5G 요금제는 5만5000(8GB)·7만5000(150GB)·8만9000(무제한)·12만5000(무제한)원으로 총 4가지다. KT는 5만5000원(8GB)부터 13만원(무제한)까지의 요금제를, LG U+는 5만5000원(9GB)부터 9만5000원(무제한)까지의 요금제를 발표했다.

 

얼핏 공통점이 엿보인다. 우선 최저 요금제가 5만5000원부터 시작하고, 7만~13만원대의 고가 요금제가 주축이다. 이통 3사의 5G 요금제 중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요금제는 월 5만5000원에 8∼9GB를 쓸 수 있는 요금제다. 동일한 데이터 용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4G 요금제와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가장 낮은 가격의 요금제가 5만원대라는 점은 5G 요금제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느껴진다. 

 

실제 사용자가 생각하는 5G 요금제의 적정 수준과 다소 차이가 난다. 리얼미터가 최근 5G 요금제에 대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3.8%는 ‘5G 통신서비스 최저요금은 3만원 미만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이어 ‘3만원 이상 5만원 미만’(32.7%), ‘5만원 이상’(13.1%) 순으로 답했다. 

 

◆수조원대 ‘주파수 경매’가 고가 요금제의 원인

 

5G 요금제가 고가 위주로 책정된 데는 사정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5G 인프라 구축 비용이다. 통신사들은 세대를 전환하는 통신 서비스를 시작할 때마다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 망을 구축하게 되는데 첫발이 주파수 확보다. 주파수는 공공재라 정부가 관리하고, 통신사가 일정기간 임대받아 사용한다.

 

정부는 주파수 배분의 형평성 등을 위해 주파수 경매를 한다. 주파수는 통신 세대에 따라 통신사가 선호하는 대역폭에 차이가 있다. 5G에서는 3.5GHz 대역과 28GHz가 핵심 주파수다.  문제는 주파수의 대역폭은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통신사들의 선호도가 높은 대역폭은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매 낙찰가도 높아진다. 

 

주파수 경매는 시작가도 매우 높다. 지난해 5G 주파수 경매 시작가는 총 3조2760억원에 달했다. 통신사들이 군침을 삼켰던 3.5GHz 주파수는 2조6544억원에서 시작했다. 다행히 지난 경매에서는 통신사들이 출혈경쟁 없이 주파수를 배분받았지만, 최종 낙찰가는 3조6183억원이나 됐다.  

 

자칫하다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도 있음에도 통신사들은 주파수 확보에 사활을 건다. 통신기술의 세대전환 과정에서 주파수는 절대적이자 최우선 조건이다. 주파수 확보에 실패하면 차세대 통신 서비스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례도 있다. 2011년 4G가 국내에서 처음 개통될 때 국내 2위 통신사인 KT는 4G 서비스를 위한 주파수 확보에 실패했다. 결국 KT는 자사의 2G 서비스를 종료한 뒤 2G에서 사용하던 주파수를 4G로 활용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KT의 2G 고객들이 대거 이탈했고, 4G 서비스도 경쟁사보다 6개월이나 늦었다. KT가 놓친 주파수 대역폭은 SK텔레콤이 확보했다.

 

◆정부, 요금제 인하 압박하면서도 경매로 세수 챙겨

 

그렇다면 정부가 주파수 경매로 챙긴 어마어마한 돈을 어디에 쓸지 궁금해진다. 매번 통신사들에게 요금제 인하를 압박하는 정부가 요금제 인상 요인인 주파수 경매가를 너무 높인다는 게 앞뒤가 안 맞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들이 지불한 경매 낙찰가는 결국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으로 이어져서다. 이통 3사가 주파수 사용의 대가로 정부에 내는 돈만 연간 1조원대에 달한다.  

 

통신사의 주파수 경매 낙찰 금액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과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으로 활용한다. 정진기금과 방발기금의 비율은 55대 45로, 정부 예산과 더해 연간 1조3000억~1조7000억원 규모로 책정된다. 정부는 이 기금을 “ICT 발전과 산업진흥, 인재육성 등에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주파수 경매 수익으로 통신비 인하 정책 펼쳐야

 

일각에선 기업들에게 통신비 인하를 압박하는 정부가 자체 통신비 인하 노력은 소홀히 한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지난해에는 방발기금 6711억원과 정진기금 6595억원이 책정됐지만, 통신복지로 볼 수 있는 ‘소외계층 통신접근권 보장’과 ‘버스 공공와이파이’에는 고작 21억6600만원 사용됐다.  

 

주파수 경매가 통신비 인하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5G 경매에서는 경매 시작가가 지나치게 높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4G 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2011년 주파수 경매 시작가는 1조1520억원이었다. 2016년 4G 추가 경매에서는 2조5779억원, 2018년 5G 주파수 경매는 3조2760억원으로 치솟았다. 정부가 주파수 경매를 할 때마다 조단위의 숫자가 바뀐 것이다. 정부는 경매 시작가 설정에 대한 정확한 산식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전파법 시행령상의 여러 기준과 기술 및 경쟁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한다. 또 5G 주파수 경매의 경우 2016년 경매 때와 비교해 주파수 대역 폭이 2배 가량 넓은 점을 감안하면 시작가가 낮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통신사들도 주파수 경매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호소한다. 지난해 경매를 앞두고 SK텔레콤 관계자는 “연간 5000억원 주파수 할당 대가를 납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T 관계자도 “이통 3사가 납부하는 주파수 할당 대가가 연 1조4000억원 수준으로 전체 매출의 5%가 넘어간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통신사들은 5G 경매 낙찰가뿐 아니라 5G 인프라 구축에 대한 투자도 감내해야 한다. 통신사들이 5G 인프라 구축에 투입해야 하는 비용은 각각 5조~7조원 수준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주파수 경매에 따른 통신사의 부담을 줄이고,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로 이어지려면 정부가 주파수 경매에서 얻은 수익을 통신복지에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5G시대 가계통신비 부담 어떻게 낮출 것인가’ 토론회에서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정부는 연간 수조원이 넘는 주파수할당 대가 재원을 통신복지에 분담하고, 통신 3사는 그만큼 통신비를 인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주파수 경매 대금을 복지 차원에서 통신비 감면에 사용하게 된다면 통신 3사는 그만큼의 추가적인 통신비 인하 여력이 발생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