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국립중앙박물관이 숨긴(?) 보물

‘적상산사고본 실록 첫 확인 성과.’

지난달 26일 문화재청이 낸 보도자료의 제목 중 일부다. 지난해 실시한 소장처 조사에서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걸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실록을 보관한 네 곳 중 하나인 적상산사고의 것은 6·25전쟁 중 북한으로 반출돼 남한에는 없다고 알려져 있었던 터라 꽤 놀라운 일이었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무척 반가운 일이긴 한데 희한한 구석이 있다. 이런 중요한 문화재의 존재를 왜 지금껏 모르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적상산사고본이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중박)에 1권, 전적류 소장처로는 최고로 꼽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3권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의문은 더 커진다. 적상산사고본의 가치와 의미를 몰랐나, 아니면 최근에야 소장하게 돼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중박은 적상산사고본을 2005년 한 개인소장가에게서 구입했다. 내부적으로는 적상산사고본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장서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0년 넘게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 전문가들의 상당수도 마찬가지였다. 한 국립박물관의 관장은 보도를 접하고 “왜 그게 중박에 있는 거야”라고 물었다고 한다.

최고의 시설과 인력을 갖춘 곳이니 보관에 문제야 없었겠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유구한 역사, 찬란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우고, 전문가들과 공유해 가치를 재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문화재 관련 기관 본연의 사명이고, 국립기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혹은 행방을 알 수 없던 문화재가 중박 수장고에서 발견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101호)의 일부인 사자상의 존재가 2016년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게 대표적이다. 한 해 전인 2015년 중박 정기간행물에 이 석탑을 다룬 논문이 발표된 것이 계기가 돼 사자상을 중박이 소장하고 있고, 2013년에는 보존처리까지 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지난해에는 조선왕실의 태항아리 일부가 중박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나중에 보물로 지정된 대동여지도 목판도 있다.

소장품 파악도 제대로 못하느냐고 비판만 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기는 하다. 중박의 소장품은 40만점에 이른다. 이 중 상당수가 관리가 허술했던 일제강점기에 수집됐고, 6·25전쟁 등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부침이 심했다. 소장품의 유래와 의미, 이동경로 등을 파악하기 어려운 여건인 데다 지금도 관리 인력과 예산은 태부족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감안해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문화재청은 바로 국보지정을 예고할 정도의 가치를 가진 실록의 적상산사고본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건 게으름 혹은 무신경의 혐의를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럴 의도야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공유해야 할 보물을 숨기고 있었던 셈이다. 차제에 중박의 폐쇄적인 소장품 관리가 이런 일이 반복되는 원인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