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절감이 만든 '737 맥스 8'… '유물' 수준이었다

비용 절감이 최우선, 변화 거부하다 잇단 참사…명예도 함께 ‘추락’/보잉·항공사들 함께 자초한 ‘비극’/수백명 안전 담보한 ‘비즈니스’의 최후

“일단 돈을 아끼고 싶어했고, 품질증명 및 비행테스트에 들일 비용을 최소화하려 했습니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로 얼룩진 보잉사의 737맥스 관련 기술자 마이크 렌즐맨은 8일(현지시간) 보도된 뉴욕타임스(NYT) 보도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에 따르면 각종 비용을 수반하는 ‘품질 재증명’을 요하는 어떠한 변화도 737 기종엔 허락되지 않았다. 60년대 디자인과 90년대에 쓰던 컴퓨터 시스템, 매뉴얼은 직접 종이책을 뒤져야만 하는 ‘구시대의 유산’ 총합체였다.

 

가장 최신 여객기에서 드러난 가장 올드한 내·외면. 이 기괴한 조합의 실체가 보잉 737맥스 참사의 핵심 열쇠란 지적이 나온다. 보잉의 베스트셀링 모델은 한때 화려한 역사를 일군 주인공이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변화를 거부하면서 한순간 브랜드 가치를 뒤흔들 ‘위험요소’로 전락했다.

 

이날 NYT에 따르면 오직 보잉 737맥스 기종만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과거의 복잡한 시스템과 아날로그한 매뉴얼 등을 고집했다.

 

다른 보잉 기종들은 손잡이를 돌리고 2개의 스위치를 누르는 등 간소화된 작동법을 도입하는 동안 737맥스는 52년여 전 방식인 7단계 작업을 일일이 하기를 고수했다. 다른 비행기에 사용되는 전자 경보 방식 대신 조종사가 매뉴얼 책자를 뒤적여 문제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추가 비용을 유발하는 모든 종류의 변화는 배척됐다. 새 시스템으로 갈아치우면 조종사 훈련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디자인과 품질증명도 다시 해야 하며, 시간도 더 걸리기 때문이었다. 

 

기술적으로만 봐도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뒷전에 둔 채 눈앞에 닥치는 ‘증상’을 임시방편으로 땜질하는 데 그쳤다. 예를 들어 엔진이 더 커지고 놓이는 위치가 바뀜에 따라 기체가 위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발생하자 기체를 하강시켜주는 ‘조종특성 향상시스템(MCAS)’을 개발해 보완하는 식이다. MCAS 오작동은 두 번의 추락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 개의 센서에만 의존하는 737맥스의 시스템 디자인 역시 항공업계에서는 드문 사례로 분석한다. 여러 센서를 두고 반복적으로 판단을 검증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를 인지한 에어버스는 센서를 3개 이상 설치해서 이를 해결하고자 한 것과 대비된다. 센서가 두 개 있더라도 하나가 고장났을 때 어떤 판단이 맞는지 검증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대부분의 다른 보잉 기종들이 전자 시스템으로 체크리스트를 제공해 빼먹는 부분이 없도록 하는 데 비해 737은 조종사들이 매뉴얼 책자를 보며 수동으로 체크한다. 기계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다른 항공기의 전자 매뉴얼은 원인과 해결책을 바로 띄워주지만, 737은 경보등이 켜질뿐이라 이걸 또 매뉴얼에서 찾아내야 한다.

 

최근 두 번의 참사를 돌아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각각의 충돌 보고서를 보면 189명이 사망한 인도네시아 사고 때는 MCAS 작동 문제로 기체가 추락하기 직전까지 조종사들이 매뉴얼을 뒤지며 상의하고 있었다. 157명이 사망한 에티오피아 사고 때는 조종사들이 안정장치 모터를 차단했다 다시 올려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수동으로 좌석 옆에 있는 휠을 돌려야 모터가 작동하는 737 시스템은 고속으로 기체가 움직일 때 작동이 쉽지 않은 특성이 있었고, 이를 보잉사가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고 NYT는 지적했다. 

 

정리하면 한번에 수백명 목숨을 책임지는 항공기를 보잉사가 지나치게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화를 자초한 것이라는 평가다. 추락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MCAS 오작동이었다 해도 운영자들의 부적절한 가치관에서부터 문제의 씨앗이 싹텄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비단 보잉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보잉의 전략이 먹힌 것은 비행기를 사는 항공사들 역시 조종사 훈련 비용을 최소화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NYT는 “항공사들이 737기종을 이전 모델들과 같게 만들어 조종사들이 비싼 훈련을 받지 않아도 몰 수 있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조종사 입장에서도 같은 기체를 편하게 계속 몰면 그만이었다.

 

보잉사의 737기 시험비행사로 일했던 매튜 멘자는 “항공사들은 조종사들을 추가 훈련 없이 쓰기 위해 보잉이 새롭고 좋은 기체를 굳이 선사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치한 이해관계는 보잉이 50년 된 낡은 디자인을 계속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멘자는 “‘고장나기 전까진 고칠 일 없다’는 옛 속담처럼 그렇게 옛날 방식을 반복했다”고 꼬집었다.

 

2011년쯤엔 보잉측에서도 737기의 디자인을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지했지만 경쟁사 에어버스가 새로운 연료 효율형 엔진을 탑재한 단일통로 항공기 A320을 내놓으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다시 하던 짓을 반복했다. 전면 수정 대신 기체 업데이트에 그친 것이다.

 

역시 이전 737맥스 기종 관련 종사자였던 루드케는 “‘결국 737기는 그대로 가는군’이라며 우리는 눈알을 굴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무도 이게 위험하다고 확언할 순 없었지만 우리 모두 한계점이 오고 있음을 눈치챘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보잉 737기는 현대적 디자인에 더이상 쓰이지 않는 예전 모습과 90년대 가정용 컴퓨터 수준의 처리능력을 보유한 채 50살 넘도록 나이를 먹어왔다. 이에 기술자들의 좌절감은 점점 심화됐다고 NYT는 전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