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처벌 조항인 형법 제269조 1항(동의낙태죄)과 제270조 1항(자기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2020년 12월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유남석 헌재소장을 포함한 6기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낙태죄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봤다. 위헌 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헌법에 반한다고 본 7명 중 4명은 헌법불합치, 2명은 단순위헌 결정을 내렸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2명이었다.
여기서 ‘위헌’은 해당 법률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판결 즉시 법적 효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헌법불합치’는 위헌 결정이 변형된 형태 중 하나로,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해당 법률을 당장 무력화하지 않는 성격의 결정이다.
즉, 해당 법률을 즉시 없앨 경우 생길 사회적 혼란과 법의 공백이 우려돼 대체 법을 마련하기 전까지 법률을 잠깐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는 국회가 2020년 12월31일까지 낙태 관련법을 개정하도록 시한을 지정했으며, 만약 국회가 이때까지 개정안을 형법에 반영하지 않으면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헌법불합치와 위헌의 또 다른 차이는 기존에 이 법으로 처벌을 받은 이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다.
특정 법률이 위헌 결정을 받으면, 이전에 이 법률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이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무죄를 선고 받게 된다.
헌법 불합치의 경우 해당 법률이 위헌이기는 하지만 기존에 처벌을 받은 이들이 무죄로 재심을 받을 수는 없다. 이는 낙태죄로 인한 전과기록은 여전히 남는다는 의미다.
한편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유 헌재소장·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를 중점에 뒀다.
재판관은 “낙태죄 조항은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해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다”며 “여성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이어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라면 (임신한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 낙태에 대해선 국가가 생명보호 수단 및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이 전한 단순 위헌 결정은 형법상 낙태죄 규정이 선고 즉시 효력을 상실함을 말한다. 처벌 규정이 사라지는 만큼 사실상 임신중절이 전면 허용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임신 초기인 14주 무렵(제1삼분기)까지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해 스스로 낙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에 합헌의견을 내린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인간의 존엄과 태아의 생명 중시를 앞세웠다. 이들은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낙태죄가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며 “헌재가 2012년 낙태죄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는데 7년이 채 경과되지 않은 현 시점에 판단을 바꿀 만큼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소봄이 온라인 뉴스 기자 s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