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하면 보통 어떤 원료가 떠오를까? 아마 많은 소비자는 보리, 홉, 물 등이 생각이 날 것이다. 독일 바이에른공국의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 라인하이츠거보트)에서 맥주는 이 세 가지(보리, 물, 홉)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법령을 공포했고, 독일의 통일과 이민자들의 해외 진출로 ‘맥주 순수령’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맥주 순수령’이란 이름이지만 의외로 ‘순수하지 않았다’는 것. 바로 정치권력과 기득권 경쟁이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맥주 순수령’ 이전에는 홉 외에 ‘구르트’라는 다양한 식물성 원료를 맥주에 넣었다. 이 구르트에는 다양한 약재가 들어가는 만큼, 향정신성 또는 중독성 있는 물질을 섞기도 했다. 이것을 홉 하나로 통일시키면서 맥주의 질을 높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의 기득권은 교회와 영주. 특히 교회와 영주는 구르트에 대한 전매권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맥주에 구르트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세력은 약해질 수 있다. 그게 중요했다. 결국 이를 감안하면 ‘맥주 순수령’은 권력 다툼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원료가 ‘보리’로 한정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전에는 밀과 호밀로도 맥주를 많이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밀과 호밀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 결국 주식인 밀 가격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일반론. 그런데 이 보리의 전매권을 가진 계층이 있었다. 바로 바이에른공국의 귀족들이었다. 결국 ‘맥주 순수령’은 또 다른 세력을 키우는 역할도 했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사회학과 졸업. 현 전통주 갤러리 부관장.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