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외교부인가 내교부인가

“요즘 거기 왜 그런가요.”

어느 모임에서 외교부 출입기자라는 소개에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벌써 세 번째. 최근 1개월 사이에 ‘외교참사’, ‘외교결례’ 등의 단어가 TV, 신문, 인터넷을 달구던 것과 연관이 있을 터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중순 동남아 순방 당시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말을 건넨 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 사실이 알려진 지 사흘도 안 돼 외교부는 영문 보도자료에서 발틱 국가를 발칸 국가로 오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주의를 당부했지만 헛수고였다. 지난 4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스페인 차관급 전략대화 현장엔 구겨진 태극기가 걸렸다.

정선형 외교안보부 기자

안팎의 지적에 외교부는 억울할 수도 있다. 외교부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아니라 더 안타까울 수도 있다. 지난 11일 WTO(세계무역기구) 일본 수산물 분쟁에서 우리 정부는 1심을 뒤집고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유지하는 판결을 얻어냈다. 정부 차원의 대응과정에서 외교부는 일본과 제3국 동향을 파악하면서 관련 자료를 수집해 지원했다. 주무부처가 아니었지만 우리로서는 확실한 외교적 성과였다.



이런 성과 앞에서도 외교부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연이은 사기 저하로 눈치 보기도 늘어난 모양새다. 최근 통일부가 외교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의 제재면제를 위해 탄원서 성격의 문서를 외교부를 통해 미국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통일부는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외교부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관련 부처이지만, 통일부에 입장 발표를 일임한 셈이다.

‘우리 정부의 비핵화 정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외교부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매번 “동맹국인 미국과 의견이 일치한다”는 모호한 메시지로 갈음하고 있다. 미국과 동일한 메시지를 내면서도 북한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곤란한 입장을 이해한다고 해도 눈치 보기가 심해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청와대의 과도한 개입으로 발생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재외공관장 초청 만찬에서 “국가 경영에서 지금처럼 외교가 중요해진 때가 없었다.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외교란 자율성이 주어져야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외교부의 관계는 말 그대로 톱다운 방식일 뿐이다. 이달 초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청와대가 ‘11일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는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성과를 도출하거나 중대 소식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던 상황이었다. 청와대의 앞선 발표로 한·미 외교장관 회담 발표문은 김이 빠진 느낌이 돼 버렸다.

계속 정부 내부의 눈치만 봐서 그런지, 외교부는 대외 메시지 관리에서도 손을 놔버린 모양새다. 최근 만난 외신기자는 “외교부가 아니라 내교부”라고 일침을 놨다. 외교부는 국내 언론에도 폐쇄적으로 유명하지만, 외신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비판으로 들렸다. 밖으로 나타난 메시지가 ‘외교부 사기 저하’라면, 외교 당국 혹은 그 윗선은 제대로 진단을 하고 사기를 북돋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선형 외교안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