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시바우 전 주한미국대사 “美, 北을 너무 강경하게 대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미국대사가 교착국면을 맞은 북·미 관계 해법으로 “대북제재에 유연성을 가질 것”을 제시했다. 다만 25일 치러지는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러시아의 획기적 지원은 어려울 것’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신만의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산 플래넘 2019’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너무 강경하고 경직된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며 “‘전부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보는 것 같은데, 비핵화 시작 단계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런 태도는 다소 경직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버시바우는 “조만간 북·러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며, 이번 정상회담은 북핵 협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김 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북한에게 북쪽 우방(러시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것”이라고 봤다. 이를 통해 경제적 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압박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하지만 러시아는 수년째 핵무기 비확산과 관련해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에 대한 경제재제 완화에 러시아가 획기적 전환을 마련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 북·러 정상회담에서 경제제재 완화와 관련해 러시아가 북한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하는지. 그리고 푸틴 대통령이 북·러 정상회담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일대일로 회의’에서 만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활동이 북핵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푸틴 대통령이 북한에 큰 원조나 지원을 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행동은 미국의 행보와 일치하지 않고, 국제사회 또한 놀라게 될 것이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일대일로 정상회담에서 만날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이 만난다면 미국이 더 유연하게 움직일 것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은 강경한 입장을 갖고있고, 북한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비핵화를 시행할 때 만 제재를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미국은 너무 강경하고 경직된 접근 방식을 보이고 있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 (all or nothing)’ 이라는 태도인데, 지금은 비핵화 시작 부분이다. 시작 부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관점은 너무 경직된 것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前주한미국대사. 서상배 선임기자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버린 것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일부를 제거하는 대가로 거의 모든 제재를 해제할 것을 매우 애매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스몰딜’을 균형잡힌 방향으로 거래(협상을)한다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하노이 정상회담을 통해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연다면 실무자 수준의 논의가 먼저 실행돼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은 반대의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다. 최근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했다. 실무자들의 협상이 아니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스윗 하트 딜’을 해야 한다고 보고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됐을 때 다음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비핵화 추동 안으로 ‘굿 이너프 딜’을 얘기했다. ‘굿 이너프’ 라는 게 존재한다고 보나. 그리고 해리 해리스 현 주한미대사가 굿 이너프 딜에 대해 한국 정부로부터 내용을 공유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주한미대사가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에 불만을 표한 것으로 읽히는데, 대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현직 주한미대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가 말한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무엇이 ‘굿 이너프 딜’이냐에 대해서는, 위협을 감소의 기준에 대한 것으로 볼수 있다. 기준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인데, 영변을 없앤다는 것이 핵무기 생산시설이나, 발사체 개발 등을 없애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위협을 줄여나가는 것을 알아가는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로서 북한의 의지를 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스냅백’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행보가 없었다. 

 

3개년, 5개년 계획의 로드맵을 만들 경우, 북한이 첫발을 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것은 완전한 비핵화다. 생산시설을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제재를 해제하는 것도 순차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 국제적 검증과정이 있어야 한다. 러시아와도 예전에 이런 것을 진행했는데, ‘우리는 너를 믿지만 검증은 하겠다’는 방식이다. 

-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바라는 건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리고 푸틴 대통령은 어떻게 할 것으로 보나.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바라는건 북한에 대한 정치적 지지와 대북제재를 이겨내기 위한 경제적 지지일 것이다. 하지만 협상을 이끌려면 준비를 해야 한다. 푸틴 대통령은 물론이고 북한도 비핵화 준비를 해야한다. 그런 다음에야 가스 파이프든 철도든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 위협을 줄여나가는 스텝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영변핵시설 폐기 카드를 제시했고, 2016년 이후부터의 대북제재를 해제해달라고 했다. 이건 초기 스텝이 될 수 있다고 보는건가

 

영변에 대한 것도 하나의 스텝이 될 가능성이 있다. 과정을 보이면서 제재조치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영변이 갖는 상징성이 있고,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첫번째 단계는 핵 시설 하나를 폐기하는게 아니라 ‘전반적인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진행해야 한다. 예컨대 생산시설이나 운반체 개발 등을 폐기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만약 소세지를 자를때 매우 얇은 슬라이스로 자를 수 있고, 크게 자를 수도 있다. 보상을 바란다면 좀 더 큰 것을 포기하고 그렇게 해서 제재조치에 있어서 더 많은 부분들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지만 영변 핵시설 하나만 포기해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경제재제 해제를 하지 못하는 것은 추후 협상에서 미국이 이용할 카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언을 한다면?

 

일단 계속 미국과 동일한 입장에 서서 협력해 움직여야 하고, 김정은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김 위원장에게 직접적으로 미국 정가의 입장을 설명한다거나, 어느 정도까지 융통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마지노선을 미국에 알려준다든가 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양쪽에 선을 지키면서 활동해야 하는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