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고 있는 북·러 정상회담은 우리 정부와 미국 등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서울에서 개최된 ‘아산 플래넘 2019’ 행사를 위해 방한한 미국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미국 압박용’으로 해석했다. 북한이 북·중·러 벨트를 강화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도록 하는 데 이번 회담의 목적이 있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 큰 합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 美 압박용”
수미 테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위원은 북·러 정상회담에 앞서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산 플래넘 2019’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미국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일부러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행사를 위해 방한한 조너선 폴락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시 세계일보 등과의 별도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이) 하루 정도 만났다는 것을 제외하면 큰 의미는 되지 않을 듯하다”며 “양국의 우호적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는 정도의 합의문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폴락 연구원 역시 “한반도 문제는 러시아가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보기 어렵다”며 “중국과 비교해서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만큼) 준비된 상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관여하는) 6자회담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폴락 연구원은 “그럼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핵화 협상) 틀 안에서 벗어나 있다가 재편입되는 의미는 있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 입장에서 또 하나의 외교 관계를 재개하고, 동시에 이 모든 프로세스에서 일본을 고립시키고 제외시켰다는 부수적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산 플래넘 2019에 참가한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미국대사도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한테 바라는 것은 북한에 대한 정치적 지지와 대북제재를 이겨내기 위한 경제적 지지”라면서도 “하지만 ‘딜’을 이끌려면 (실질적 비핵화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푸틴과 시진핑은 (25일) 일대일로 정상회담에서 만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제재 완화에) 더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은 북한이 강경한 입장을 갖고 구체적인 비핵화를 시행할 때만 이런 제재를 없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 새로운 역할 마련 어려워”
한편 테리 위원은 회견에서 “최근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에게 실무급 회담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지만 북측은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테리 위원은 그러면서 “북측이 실무급 협상이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협상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하는 건 이론적으로 가능할 순 있지만 현실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일단 계속 미국과 동일한 입장으로 협력해 움직여야 하고, 김 위원장에게 (미국과) 동일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김 위원장에게 직접적으로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거나, 어느 정도까지 융통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마지노선을 미국에 알려준다든가 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양쪽에 선을 지키면서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홍주형·조병욱 기자 jhh@segye.com, 사진=서상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