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5시30분쯤 국회 본청 7층 의안과 앞 복도에서 점거농성을 하던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이 갑자기 술렁였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의안과를 직접 찾아 법안을 제출하지 않고 전자 입법발의시스템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발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4법이 모두 발의된 것이다. 지난 24일 밤부터 이날 오후까지 40여 시간 동안 의안과 앞에서 법안 제출을 ‘육탄저지’하려던 한국당은 “속았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을 둘러싼 여야 난타전에선 전례 없던 신종 수법이 동원되면서 볼썽사나운 ‘진기록’이 쌓이고 있다. 전날 격렬한 몸싸움 등으로 ‘동물국회’ 모습이 2012년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 7년 만에 재현됐다. 또 패스트트랙 법안을 접수하는 의안과에 국회의장의 경호권이 1986년 이후 33년 만에 발동됐다.
◆1호 전자 입법 발의…한국당 “꼼수, 무효”
◆빠루 등 각종 연장 난무
“민주당 측이 준비한 건지, 국회 방호과에서 가져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제 저희가 뺏은 ‘빠루(노루발못뽑이)’입니다.”
26일 오전 8시 본청 7층 복도. 한국당 긴급의원총회 사회를 맡은 김정재 원내대변인의 설명과 함께 나 원내대표가 이른바 ‘빠루’를 들고 연단에 섰다. 나 원내대표는 ‘전리품’을 흔들어 보이며 “오늘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온몸으로 저항하겠다”고 더욱 강력한 대여투쟁을 선언했다. 그 뒤로 진을 친 한국당 의원들은 연신 눈을 비비며 전날부터 이어진 ‘밤샘 투쟁’의 강도를 짐작하게 했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 등은 전날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추가로 제출하기 위해 의안과를 찾았으나 한국당 의원들이 문을 걸어잠근 채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하면서 무위에 그쳤다. 이어 오전 3시쯤 국회 관계자가 민주당 관계자와 동행한 가운데 쇠지렛대, 망치 등을 사용해 의안과 사무실 출입문 개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출입문이 파손됐다는 게 한국당 주장이다. 파손된 문은 한국당 의원들이 스티로폼과 청테이프로 덧대 임시보강을 해둔 상태다. 그러나 민주당은 경호권 발동에 따른 국회 차원의 조치로 민주당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논란이 커지자 국회사무처는 “해당 쇠지렛대, 장도리 등은 국회사무처 경위직원들이 사용했다.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부상자·병원행 속출…문희상 의장도 병원
폭력 사태로 인해 적잖은 의원들이 다치고 심지어 병원에 실려간 것도 보기 드문 장면이다. 전날 오후 6시45분쯤 시작돼 이날 오전 4시쯤 끝난 국회 곳곳에서의 물리적 충돌로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판이다. 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몸싸움 과정에서 오전 2시쯤 고통을 호소하며 119 구급대에 실려 갔다. 김 의원은 갈비뼈가 부러져 현재 입원한 상태다. 같은 당 박덕흠 의원도 상대편과 드잡이를 하다 바닥에 쓰러져 긴급 후송됐다. 나 원내대표는 “의원들이 5명 넘게 부상당했다”며 향후 법적 대처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24일 한국당 의원들과의 물리적 충돌 이후 저혈당 쇼크가 와서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문 의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의장께서 입원 중인 병원 측으로부터 수술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문 의장은 정밀검사를 진행한 뒤 27일쯤 수술 시기를 결정할 예정이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