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최악의 미세먼지가 수시로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미세먼지 저감조치 일환인 자동차 공회전 단속을 둘러싼 보행자와 운전자, 그리고 경찰관 간의 실랑이가 헌법재판소까지 가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A씨는 지난 3월 어느 날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 공터를 걷다가 주차한 상태로 공회전 중인 소형 트럭을 발견했다. A씨가 트럭에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니 운전자는 시동을 켠 채 운전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평소 미세먼지 문제에 심각성을 느껴 온 A씨는 급히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근무 중인 경찰관에게 “불법 공회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담당 경찰관은 A씨가 기대한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서 단순히 자동차 시동을 켠 것만으로는 불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관의 답변과 태도에 크게 실망한 A씨는 곧장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뛰어가 ‘자동차 공회전 제한 기준 위헌 확인’이란 제목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접수했다.
청구서에서 A씨는 “자동차 운전자가 시동을 걸었으면 즉시 그 자리를 떠나고, 멈추었으면 시동을 꺼 타인의 권리 침해를 예방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자동차 불법 공회전을 엄격히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부득이하게 내가 자동차 유해 가스에 노출됐다”며 “정부의 부작위로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는 주장을 폈다.
법률용어로서 ‘부작위’란 정부 등 공권력 주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헌법소원 청구서를 받아든 헌법재판관들은 A씨가 주장하는 부작위가 정말로 존재하는지부터 살펴봤다.
현재 중앙정부는 대기환경보전법에 의해, 서울시 등 지방정부는 조례에 따라 자동차 공회전을 단속하고 있다. 먼저 대기환경보전법 59조 1항은 “시·도지사는 자동차의 배출 가스로 인한 대기오염 및 연료 손실을 줄이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그 시·도의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터미널, 차고지, 주차장 등의 장소에서 자동차의 원동기를 가동한 상태로 주차하거나 정차하는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노무현정부 시절인 지난 2003년 7월 ‘서울특별시 자동차공회전 제한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서울시내에서의 자동차 공회전을 규율하고 있다.
조례에 따르면 서울시내 전구역은 자동차 공회전 제한 장소다. 자동차 운전자는 제한 장소에서 2분을 초과해 공회전을 하면 안 된다.
다만 기온에 따라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영상 25도 이상으로 덥거나 영상 5도 미만으로 추우면 제한 시간이 2분에서 5분으로 늘어난다.
특히 대기 온도가 0도 이하로 아주 춥거나 영상 30도 이상으로 무척 더우면 자동차 공회전을 아예 제한하지 않는다.
1일 헌재에 따르면 재판관 3인으로 구성된 제2지정재판부(재판장 이영진 재판관)는 최근 A씨의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각하란 헌법소원 제기에 필요한 법률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위헌 여부 등을 더 따질 것도 없이 심리를 종결하는 처분을 뜻한다.
헌재는 “중앙정부 차원, 그리고 서울시 등 지방정부 차원에서 자동차 공회전을 제한하기 위한 규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으므로 A씨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부작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