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수처’ 반대했다가 적폐로 몰릴라… 입 다문 지자체들

정부 의견수렴에 ‘묵묵부답’ / 공수처 기소대상에 지자체장 포함 / 17곳 중 단 한 곳도 입장표명 안 해 / 사개특위에 ‘회신 없음’ 결과 통보 / 전문가 “찬반 둘러싼 흑백논리 만연 / 구체적이고 다양한 의견수렴 필요”

중앙정부가 지난해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의견수렴에 나섰지만 단 한 곳도 의견을 표명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각 지자체가 정부 눈치를 살피며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못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1월 중순 소속 기관과 전국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행안부에 공수처에 대한 의견제시를 요구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당시 공수처를 행정부(중앙정부)가 아닌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위헌 논란이 불거졌다.

 

행안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소속 기관은 물론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등 17개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공수처안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어떤 지자체도 공수처안에 대한 의견을 회신하지 않았고, 행안부는 “각 지자체에 의견조회를 했으나 회신한 기관이 없다”는 결과를 지난달 중순 국회 사개특위에 전달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감사관실과 총무과, 행정자치과 등 관련 부서에서 공수처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해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행안부 관계자도 “아무 곳도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향후 행안부 차원에서 추가적인 의견수렴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당시 행안부가 각 지자체에 의견을 물은 공수처안은 지난해 11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수처안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송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수처안이 법무부 입장을 반영한 안”이라고 할 정도로 사실상 정부안으로 불렸다. 여기에는 지자체장도 공수처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부정적 의견을 보유한 지자체가 정부 눈치를 살펴 입장 표명을 못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도 “각 지자체에서 공수처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많이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안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합의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안의 밑바탕이 됐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공수처안에 대해 지자체는 물론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의견수렴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현행 공수처안은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막강해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백 의원의 공수처안은 여야 각각 2명씩 추천한 4명과 법원행정처장,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모두 7명이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재적 위원 5분의 4 이상 동의로 공수처장 후보자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한 뒤 국회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 찬반을 둘러싼 흑백 논리가 만연한 상황에서 지자체가 자유로운 의견을 낼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공수처에 반대하면 적폐로 몰기보다는 구체적인 안을 두고 시민단체와 지자체의 다양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난해부터 청와대가 (공수처를) 밀어붙여 지자체가 반대해도 외형만 갖추는 느낌이 날 것”이라며 “도입 취지는 좋지만 대통령이 공수처 인사권에 깊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규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도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수처는 누가 견제하고 통제하느냐”며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이나 국회가 상당 부분 관여할 수 있도록 정한 모양이라 정치적 열기의 전도율이 높다”고 우려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